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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인공 (The Protagonists of History) - 홍종일목사

역사의 주인공 설교 2004년 창신교회에서 사역하실 때의 홍종일목사님의 설교기록 입니다. 1부 시작 The Protagonists of History (부제: Echoes of Providence / 섭리의 메아리) 🎬 Part 1: Who is the True Protagonist of History? (제1부: 역사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1) 역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만드신 천지를 운행하시며, 인생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절대자이십니다. (1) Who is the Master of history? God is the Master of history. He is the Absolute Being who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governs the universe He made, and rules over the fortunes and misfortunes of human life. (2) 그러면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장(🗺️)에서 쓰임 받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사람을 통하여 그의 구원 사역을 이루려 하십니다. 바로 그 위대한 구원 사역에 쓰임 받는 한, 우리들은 바로 역사의 당당한 주인공인 것입니다. (2) Then, who ar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It is none other than us. Yes, indeed. It is we who are called and used in the grand theater of God's providence. At every critical turning point of history, God seeks to accomplish His work of salvation through human beings. As long as we are being utilized in that...

역사의 주인공 (The Protagonists of History) - 홍종일목사

역사의 주인공 설교

2004년 창신교회에서 사역하실 때의 홍종일목사님의 설교기록 입니다.

1부 시작

The Protagonists of History

(부제: Echoes of Providence / 섭리의 메아리)

🎬 Part 1: Who is the True Protagonist of History?

(제1부: 역사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1) 역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만드신 천지를 운행하시며, 인생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절대자이십니다.

(1) Who is the Master of history? God is the Master of history. He is the Absolute Being who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governs the universe He made, and rules over the fortunes and misfortunes of human life.

(2) 그러면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장(🗺️)에서 쓰임 받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사람을 통하여 그의 구원 사역을 이루려 하십니다. 바로 그 위대한 구원 사역에 쓰임 받는 한, 우리들은 바로 역사의 당당한 주인공인 것입니다.

(2) Then, who ar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It is none other than us. Yes, indeed. It is we who are called and used in the grand theater of God's providence.

At every critical turning point of history, God seeks to accomplish His work of salvation through human beings. As long as we are being utilized in that grand redemptive work, we are the true protagonists of history.

(3) 무대 위로 떠오르는 한 사람

이제, 역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에스더(Esther)의 극적인 등장에 대해서 함께 알아봅시다.

(3) A Figure Rising Onto the Stage Now, let us look into the dramatic emergence of Esther, one of these true protagonists of history.

1부 요약 -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 사역에서 우리는 쓰임 받는 소중한 존재 입니다.

2부 시작

🍷 Part 2: The Banquet of Susa and the Vanity of Egos

(제2부: 수산궁의 잔치와 허망한 자존심)

1) 아내의 미모를 자랑하려는 남편의 허영심에서 출발하다

페르시아 제국의 겨울 수도인 수산성의 수산궁에서 아하수에로 임금님이 187일간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지난 180일 동안 방백들을 위한 잔치를 성공리에 수행하고, 이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앞으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의미에서 다시 7일간 수산성의 대소 인민들과 방백들 중에서 중요한 인사들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고 이제 그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길고도 재미있었고, 또 때로는 힘들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금님은 감회가 남다릅니다.

여자들은 왕비 주최로 따로 모여서 자기네들끼리 잔치를 벌이고 있고, 여기는 남자들만 모여서 마지막 날의 술자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반년이나 계속되었던 잔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술이 좀 과해버렸습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폭음을 하지 못하도록, 각자의 주량대로 정도껏 규모 있게 마시도록 명령을 내려놓고는 그만 자기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아름다운 무희들이 제국 내의 각지에서 뽑혀와서 춤을 추는데 남자들의 혼을 아주 쏙 빼놓고 있습니다. 술이 들어가면 남자들은 약간은 거칠고 본능적으로 색정적으로 되는가 봅니다. 술만 마시던 신하들이 이제 슬슬 저 여자가 예쁘니 이 여자가 예쁘니 하면서 여자의 미모를 논하기 시작합니다. 각자가 자기 민족 여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동쪽으로 인도에서부터 리비아까지, 북쪽으로는 카프카즈에서부터 남으로는 이디오피아까지 수많은 지역에서 온 제후들은 제가끔 자기네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술꾼들이 대개 허풍이 셉니다. 모두 다 자기네 민족의 여인이 가장 아름답다고 침을 튀기며 자랑을 하는데 말로는 아무도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듣던 임금님은 자기 부인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여인이 아름답다는 자랑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가 페르시아이고, 페르시아에 정복당한 민족의 방백들이기 때문에 민족적 감정 때문에라도 페르시아 여인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기가 싫어져서 막무가내로 임금님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임금님을 더 화나게 했습니다. '이것들이 한번 내 처의 미모를 보기만 하면 아무 소리 못 하리라' 생각하고는 왕후를 잔치 자리에 부르기로 하고 내시들을 일곱 명이나 파견해서 그녀를 불렀습니다.

1) Starting from a Husband's Vanity to Boast of His Wife's Beauty

King Ahasuerus was hosting a 187-day banquet in the Palace of Susa, the winter capital of the Persian Empire. Having successfully completed the 180-day feast for his nobles and officials, the king was now holding an additional 7-day banquet for all the people of Susa, from the greatest to the least, including key dignitaries and their spouses, to commend their hard work and comfort them for the days ahead.

Looking back, they were long, joyful, and sometimes arduous days. And now, as this grand finale was drawing to a close, the king was deeply moved.

While the women were gathering separately for a banquet hosted by the queen, the men were gathered here for a drinking party on the final day. Thinking of it as the last day of a celebration that had lasted half a year, the king just couldn't contain himself. Consequently, he drank a bit too much. To prevent this very thing, he had previously issued an order that no one should overindulge and everyone should drink in moderation according to their capacity—yet he himself ended up drinking far too much.

Yet, it wasn't that women were entirely absent. To heighten the festive mood, beautiful dancers selected from all corners of the empire performed, completely captivating the men. When alcohol flows, men tend to become somewhat coarse and instinctively lustful. The officials, who had been doing nothing but drinking, now slowly began to discuss the beauty of the women, debating who was prettier. Each started to boast about the beauty of the women from their own nation.

From India in the east to Libya in the west, and from the Caucasus in the north to Ethiopia in the south, princes from countless regions proudly bragged about their women. Drunkards usually exaggerate. Everyone spat as they boasted that the women of their own people were the most beautiful, refusing to lose in a battle of words.

Hearing this, the king felt a sudden urge to boast of his own wife's beauty. Thus, he claimed that Persian women were the most beautiful. However, since this was Persia and the guests were nobles of conquered nations, their national pride made them reluctant to acknowledge the beauty of Persian women, and they stubbornly refused to believe the king. This angered the king even more. Thinking, "Once they see my wife's beauty, they won't be able to say a word," he decided to summon the queen to the banquet and dispatched seven eunuchs to bring her.

2) 당시에도 여권신장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왕후는 그날 여권신장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여자에게 미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독약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비님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임금님이 모든 걸 다 들어주고 왕비님의 눈짓 하나에 쩔쩔맬 거라고 귀부인들이 추켜세우자, 왕비는 그만 우쭐해져서는 기고만장입니다.

그러자 귀부인들은 왕비님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이 나라의 여권을 신장시키자고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이 판에 내시들이 몰려와서 왕의 전갈을 전하자 부인들은 왕비에게 가지 말 것을 주문합니다. "뭐 여자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하인인 줄 아느냐"고, "이번에 버릇을 고쳐야 된다"고 마구 왕비를 충동질합니다.

2) Even Back Then, There Was a Discussion on Women's Rights

Coincidentally, however, the queen was engaged in a discussion about advancing women's rights that very day. It was truly a matter of chance that the conversation turned this way. Telling a woman she is beautiful can act like a sweet poison. As the noblewomen flattered the queen, saying that she was so incomparably beautiful that the king would grant her every wish and tremble at her slightest glance, the queen grew proud and arrogant.

Inspired by this, the noblewomen rallied around the queen, passionately vowing to elevate women's rights in the kingdom. Right at that moment, the eunuchs arrived to deliver the king's command. The noblewomen immediately urged the queen not to go. They incited her, asking if she was some mere servant who must come and go at a man's beck and call, declaring that this was the perfect opportunity to correct his behavior.

3) 허망한 자존심 경쟁이 빚은 참혹한 결과

왕비 역시 술이 취해서 일곱 내시가 온 것이 무슨 뜻인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만 왕의 명령을 무시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왕비의 아름다움을 뽐내려고 왕비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임금님은 내시들의 보고를 받고는 화가 났습니다. 다시 그들을 보내며 이번에도 오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전하게 했습니다.

왕비 역시 지금은 물러설 처지가 아닙니다. 이 나라의 여권신장을 위해서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흥, 나는 가지 않겠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할지 두고 보자"고 외칩니다.

결국 이번에도 왕비를 데리고 가지 못하자 왕은 엄청나게 화를 냅니다. 다음날 술이 깨고 잔치도 파하자 왕은 이제 왕실의 자문관 7명을 불러서 전례대로 하면 왕의 명령을 거역한 왕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와스디'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이란 뜻의 이름이지만, 미모가 뛰어나지만 마음씨가 잔인해서 사람들을 걸핏하면 죽여버렸기 때문에 이 기회에 왕비를 궁에서 몰아내자는 신하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신하들은 왕비가 임금님의 명령을 무시한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지면 모든 여인들이 남편을 우습게 여길 것이고, 그러면 남편들은 아내를 증오해서 큰 난리가 날 터이니 왕비를 남편을 우습게 여긴 죄를 물어 폐위를 시키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럴듯도 합니다. 남자들의 환심을 사야 할 처지에 남자들을 무시하는 여자들을 벌주지 않고서는 남자들의 협조를 얻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없기에, 아하수에로 임금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왕비를 폐위시켜서 궁에서 쫓아내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3) The Tragic Consequence of a Vain Battle of Egos

The queen, also intoxicated, failed to discern the weight of the seven eunuchs' arrival and simply defied the king's command. The king, who was eagerly waiting with bated breath to flaunt the queen's beauty, grew furious upon receiving the eunuchs' report. Sending them back, he warned that he wouldn't stand idly by if she refused again.

But the queen was in no position to back down either. For the sake of advancing women's rights in the empire, she had to show her resolve. "Hmph, I will not go. Let's see what he can possibly do!" she cried.

When they failed to bring the queen this second time as well, the king exploded with rage. The next day, when the wine had worn off and the banquet ended, the king summoned his seven royal advisors to ask how, according to precedent, a queen who defied the king's order should be handled.

Vashti's name meant 'beautiful' or 'beloved', but despite her outstanding beauty, she possessed a cruel nature and would frequently execute people at a whim. Seizing this opportunity, the officials reached a tacit agreement to expel her from the palace. They argued that if word spread that the queen had defied the king, all women would despise their husbands, leading to widespread chaos born of mutual hatred.

It sounded plausible enough. Situated in a position where he needed to win the favor of men to secure their cooperation for impending wars, the king could not afford to let women who defied men go unpunished. Thus, King Ahasuerus listened to his advisors, deposed Queen Vashti, and banished her from the palace.

2부 요약 - 매우 인간적인 이해와 타산으로 돌아가는 전개 입니다. 왕은 후회할 선택을 하고 맙니다.

3부 시작

⚔️ Part 3: The Title Match of Providence: In an Age of Crisis, the Protagonist Does Not Die

(제3부: 섭리의 타이틀 매치: 위기의 시대,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4) 성경의 관점은 우리와 다르다

에스더 2장 1절: “그 후에” 왕은 전쟁을 준비하던 때의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때 신하들과 술을 먹다가 왕비의 미모를 자랑하려다가 왕비를 쫓아내게 된 일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왕은 왕비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그녀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4) The Perspective of the Bible is Different from Ours

Esther 2:1: "After these things..." The king reflected on the days when he was preparing for war. As his thoughts drifted back to how he had banished the queen just to boast of her beauty while drinking with his officials, he suddenly remembered Vashti's beautiful appearance and contemplated bringing her back. (…)

5) 인간의 상충하는 이해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이루신다

(…) 인간들의 욕망과 복잡한 계산이 충돌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당신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묵묵히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5) God Accomplishes His Work Amidst Conflicting Human Interests

(...) Even at that very moment when human desires and complex calculations clashed, God was silently moving His invisible hand to carry out His grand plan of salvation.

4.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는 우리들로 하여금 주인공으로 역할하는 구원사의 섭리의 한 장을 꾸미시기를 원합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은 자기의 구원 섭리를 이루기 위한 거대한 섭리의 역사를 꾸며가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왕도, 대통령도, 사령관도, 재벌도, 정치가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성도의 궁극적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과연 우리가 사용되느냐,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여기에 어긋난다면 왕도 대통령도 장군도 재벌도 정치가도 그 누구도 하나님이 꾸며가시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4. Yes, by the Will of God, We Ar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Everyone, God is the Master of history. He desires to craft a chapter of redemptive providence where we play the role of the protagonists. From ancient times, God has been weaving a massive history of providence to fulfill His redemptive purpose.

Here, neither kings, presidents, commanders, tycoons, nor politicians are the true protagonists. The focus is entirely on whether we are being utilized in God's redemptive providence for the ultimate victory of the saints, and what we are doing to expand His kingdom—in other words, whether we align with His will. If anyone deviates from this, be they kings, presidents, generals, tycoons, or politicians, none can be the protagonist of the history God is weaving.

🏔️ 시대의 위기를 돌파하는 주인공의 사명

지금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지금 사람들마다 입을 열어 살기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소도, 닭도, 오리도, 돼지도 병에 걸려서 먹기 어렵다고 난리입니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희귀한 질병들이 생겨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합니다.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서 이 지구상은 보이지 않는 참상을 겪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치열한 생존경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우리는 결코 죽을 수 없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허무하게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 The Mission of the Protagonist Breaking Through the Crisis of the Times

Today, the phrase "Itae-baek" (meaning the vast majority of youth in their 20s are unemployed) is widespread. People everywhere open their mouths only to speak of how difficult it is to make a living. There is an uproar because cattle, chickens, ducks, and pigs are falling ill, making it hard to even find safe food. Strange, unprecedented diseases have emerged, striking terror into human hearts. Earthquakes and famines break out in various places, causing unseen devastation across this globe. In short, it is a fierce struggle for survival.

However, if we simply become the protagonists of God's history, we can overcome everything. No matter how difficult it gets, it cannot stand against us. Why? Because I am the protagonist.

If the protagonist dies, the story ends. That's right. Before our given mission is completed, we can never die, nor can we vanish into the background of history. Because we still have work left to do.

3부 요약 - 이 글이 쓰여진 2026년 기준으로 보면 설교 시점은 22년 전. 그 때에도 살기는 어려웠네요!

핵심을 담은 설교는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환경을 넘어 오늘 일하신다고 전해집니다.

긴 고민을 했으나 제 이야기 그 때의 고민을 그대로 살려 놓겠습니다. 글의 현실 확장판 입니다.

4부 시작

🎭 Part 4: Breaking the Masks, Embracing the Mission

(제4부: 가면을 깨고, 사명을 입다)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입니다.)

The Author's Note

(This is a personal reflection, and from here on, it is the story of Seabook.)

2010년 3월의 어느 날의 독백

사람이란 너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저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인터넷 동호회가 많은 사람들 덕분에 언제나 북적북적 잘 운영되었고, 소박하게 출발한 블로그도 예상 외로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가지고 싶던 HDTV, PS3, PS2, PSP, NDS, GBA… 인기 소프트도 매달 사다 보니, 거의 다 소유… 사랑하는 친구들과도 사랑하는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 우습고, 간사하게도,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고 허전합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이것이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고, 평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가 그랬던가요, "인간은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것이 신앙이 채워주는 부분이 아닐까."

A Monologue from a Day in March 2010

I couldn't help but find human nature quite absurd. On the surface, I possessed so much. A massive online community was bustling and running smoothly thanks to many wonderful people... A blog that started humbly was receiving unexpectedly high interest... And I owned almost every gaming console I had ever wanted—HDTV, PS3, PS2, PSP, NDS, GBA—buying top-rated software every month... I was getting along well with my beloved friends and dear children.

Yet, how absurd and fickle human nature is; despite owning so much, a corner of my heart remained utterly empty and hollow. Because this was not true happiness, nor was it genuine peace. As C.S. Lewis once implied, "Human beings possess a void within that cannot be filled by worldly things. Perhaps that is the very space that faith is meant to satisfy."

🕯️ 제자들의 간절한 열망을 찾아서

기독교인이라면 자주 듣게 되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부활했고,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함축되어 있고 정형화된 메시지에 대한 것보다는, 저는 목숨까지 버려가면서도 예수를 사랑했던 당신의 제자들, 그 간절한 열망을 진심으로 가지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여 가게 했던 걸까요. 가진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말이지요. 참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고심한 끝에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이 있다면, 그것은 삶에는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심으로 목숨을 바쳐서까지, 내 모든 것을 바쳐서까지 해야 할 일이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렇게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베드로도, 스데반도 예수를 믿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죽는 것을 결코 억울해하지 않았고, 바울은 모든 것을 바쳐서 전도를 하고 여행을 했습니다.

🕯️ In Search of the Disciples' Desperate Yearning

Rather than the neatly packaged, conventional messages every Christian frequently hears—such as "Jesus bore the cross, resurrected, and loves you"—I truly craved the desperate yearning of the disciples who loved Jesus even at the cost of their own lives. What on earth drove them to move forward like that, throwing away everything they owned? I was profoundly curious.

After contemplating for a long time, the conclusion I finally reached was that life possesses a distinct mission. In other words: "Is there a task in my life for which I would truly lay down my life, for which I would surrender everything I have?" The saints of the early church lived precisely by such a mission. Peter and Stephen both died for their faith in Jesus. They never resented dying that way, and Paul poured out his entire being into his ministry and journeys.

🎭 29살의 내 모습: 가면을 깨다

나에게는 내가 모든 것을 바쳐서까지 해야 할 일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당연히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부끄러워했습니다. 내가 기독교인임을 부끄러워했고, 88만 원 알바 인생임을 부끄러워했습니다…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좋은 소리만 하려고 했고,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에 바빴습니다. 그것이… 그것이 29살의 내 모습이었습니다. 치졸했고, 유치했고, 천박했습니다. 가면 투성이의 나는, 그 가면을 깨고 나니… 참으로 볼품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2012년이 되어, 이제 31살이 되었지만 여전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슬퍼집니다.)

시작한 것을 제대로 끝을 보지 못했고… 한 번이라도 열심히 살아본 적 없었고… 시간의 흐름에 그냥 떠내려가면서, 표류하면서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늘 웃고, 친절하며,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하면서, 속으로는 갈등하고, 방황하고, 뱅글뱅글 돌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마치 생의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요.

🎭 My 29-Year-Old Self: Breaking the Masks

"Do I have a task for which I would throw away my entire being?" I ask myself once more. Naturally, I cannot give a proper answer.

I lived in shame. I was ashamed of being a Christian, and I was ashamed of my life as a part-timer earning a mere 880,000 won a month... I did nothing but evade. I only sought to speak pleasant words, busy with packaging myself into something plausible. That was... that was who I was at twenty-nine. Petty, immature, and shallow. Covered in masks, once I shattered them... I found myself looking utterly pathetic.

(Now it is 2012, and I have turned thirty-one, yet things remain the same. It feels as though I haven't changed a bit, and I quietly weep looking at my own reflection.)

I never properly finished what I started... I never lived with fierce intensity even once... I have merely drifted along with the current of time, living a wandering existence, and so I continue to live... Always smiling, kind, and maintaining a gentle demeanor on the outside, while internally conflicting, wandering, and spinning in endless circles. Until when must I live like a slave to existence?

🐂 자본주의 시대에 깨달은 두 가지 진실

더 이상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멋있다고 속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세상의 거짓말에 속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황금신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깨달은 바가 두 개 있습니다.

  • 더 많이 가진다면 행복하다는 말 — 거짓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더 많이 나눠주는 삶이 되려고 조금씩이나마 더 노력할 것입니다.

  • 그럴싸하게 멋지게 보이는 기독교인 — 거짓말입니다. 볼품없어도 성실하게 기도하고, 나약한 그대로 기도하고, 정직한 기독교인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사는 곳을 만드는 것.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사다리가 되어주고, 기꺼이 소가 되어서 밭을 갈아주렵니다. 제일 먼저,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나 스스로를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른 길에 놓아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헛것입니다.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느라 급급했던 내 모습 대신에, 지금부터라도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정직이 비웃음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만이 생을 움직여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아서 한 번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제 30대의 인생 여행의 출발점입니다.

🐂 Two Truths Learned in the Age of Capitalism

I will no longer deceive myself into thinking I am happy or impressive. Nor will I be fooled by the lies of the world. Living through this capitalistic era ruled by the god of gold, I have realized two things:

  • The claim that having more brings happiness—it is a lie. I will strive, even if by small measures, to live a life of sharing more, just as Jesus taught.

  • A Christian who merely looks grand and plausible—it is a lie. Even if I look unpromising, I will pray sincerely, pray in my weakness just as I am, and strive to be an honest Christian.

I have a mission. To create a world where people can live happily. To build a place where we can live joyfully alongside children. If it is to build such a world, I will gladly become a ladder, and gladly become an ox to plow the rugged fields. First and foremost, to achieve this, I must place myself on a path entirely different from the one I have walked until now. Unless practiced through actions rather than words, all of this is in vain.

Instead of being preoccupied with maintaining a plausible facade, I must live with absolute honesty starting this very moment. I believe that honesty is not an object of ridicule. Only those who take responsibility for their words and act upon them can truly move existence forward. I intend to try living in the footsteps of Jesus. This is the starting point of my life's journey into my thirties.

4부 요약 - 정직한 사람, 나눠주는 사람이 되려고 했던 청년 시절 제 일기가 흔적이 되었네요.


이제 글을 마치면서 2026년 버전의 영감을 솔직한 태도로 써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며, 우리는 그 주인공이다 라는 관점에는 중요한 힌트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점이며, 그는 전능하다 라는 점입니다.

기도는 응답 받을 테고, 무엇을 사명으로 할 지는 언젠가 주님이 부르실 것입니다.


사람은 욕심 덩어리라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습니다.

제 방 하나는 이제 NS2, PS5, 로지텍 레이싱 휠, 태고의 달인 북, 엄청난 소프트 진열이 되어 있습니다.

건강은 크게 달라져서, 한 두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적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참으로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적 방황을 한 적까지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추어 생각할 때, 신앙은 한결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어제의 모습이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늘 가까이 가는 것을 원하는 아름다운 찬송시 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쫓는 제대로 된 기독교인이 한 번 되어보자! 는 이런 모습입니다. 거울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말 찬송가에 실린 301장 노래가 삶의 고백이 되어 갑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마음의 중심을 살펴보셨던 주님은, 은혜로 저를 돌봐주시고, 여전히 할 일들을 알려주네요.

부디 이 감사한 마음, 주님이 살아 계신다는 믿음, 인도하신다는 계획이 닿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완벽한 개인이 아니라, 마음이 상하고 아픈 사람들 곁에 다가가 친구가 될 것입니다.

- 2026. 06. 08. 시북. (설교원문 2004년 1월 설교 - 에스더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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