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하나님의 손 (The Hand of God) - 홍종일목사

하나님의 손 설교 (2004년 창신교회 사역 청년부 설교 입니다. 홍종일 목사님) 하나님의 손 (The Hand of God) 본문: 다니엘 5:1-30 (Scripture: Daniel 5:1-30) 어떻게 하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진정한 역사의 주인으로부터 사용되어야 하겠지요. How can we becom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Naturally, we must be used by the true Master of history. 1. 벨사살은 방탕하고 음탕한 잔치를 벌입니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자존심과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그러나 그 잔치에 참석한 그 누구도 왕의 이러한 죄악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1. Belshazzar throws a profligate and immoral banquet. Here, he blasphemes God to satisfy his own pride and vanity. However, no one attending the banquet points out this wickedness of the king. 2.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계시를 내립니다 왕과 귀인들의 환락이 극에 달할 즈음 하나님의 손이 마침내 나타나 심판의 계시를 내립니다. 벨사살은 자기의 술사와 박사들을 불러들였지만 아무도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합니다. 2. The hand of God appears and delivers a revelation. Just as the pleasure of the king and his nobles reaches its peak, the hand of God finally appears to deliver a revelation of judgment. Belshazzar summons his magicians and wise men, but no one can read or interpret it. 3. 마침내 다니엘이 나타납니다 벨사살은 시세부...

하나님의 손 (The Hand of God) - 홍종일목사

하나님의 손 설교 (2004년 창신교회 사역 청년부 설교 입니다. 홍종일 목사님)

하나님의 손 (The Hand of God)

본문: 다니엘 5:1-30 (Scripture: Daniel 5:1-30)

어떻게 하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진정한 역사의 주인으로부터 사용되어야 하겠지요. How can we becom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Naturally, we must be used by the true Master of history.

1. 벨사살은 방탕하고 음탕한 잔치를 벌입니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자존심과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그러나 그 잔치에 참석한 그 누구도 왕의 이러한 죄악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1. Belshazzar throws a profligate and immoral banquet. Here, he blasphemes God to satisfy his own pride and vanity. However, no one attending the banquet points out this wickedness of the king.

2.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계시를 내립니다

왕과 귀인들의 환락이 극에 달할 즈음 하나님의 손이 마침내 나타나 심판의 계시를 내립니다. 벨사살은 자기의 술사와 박사들을 불러들였지만 아무도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합니다.

2. The hand of God appears and delivers a revelation. Just as the pleasure of the king and his nobles reaches its peak, the hand of God finally appears to deliver a revelation of judgment. Belshazzar summons his magicians and wise men, but no one can read or interpret it.

3. 마침내 다니엘이 나타납니다

벨사살은 시세부득(時勢不得)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불러들여 후한 상을 약속하고 해독을 부탁하지만, 그 마음속에 여전히 유다인과 그 하나님을 멸시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습니다.

3. Finally, Daniel appears. In a desperate situation where he has no other choice, Belshazzar summons Daniel, promising lavish rewards and asking him to interpret the writing. Yet, he fails to hide his lingering contempt for the Judeans and their God.

4.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벽에 쓰인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이 글은 결코 황당한 글자가 아니라 그 나라 사람 중에서 조금만 공부했다면 알 수 있을 글자입니다. 그러나 같은 걸 보고서도 바벨론의 박사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는 그들이 죄악에 물들어 현실 비판의 안목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4. Mene, Mene, Tekel, Upharsin. The writing on the wall is "Mene, Mene, Tekel, Upharsin." These are by no means absurd words; they are characters that anyone in that nation with a bit of education could recognize. Yet, despite seeing the same thing, the wise men of Babylon do not understand. This is because they were stained with sin and had lost their eye for critical discernment of reality.

5. 그날 밤 벨사살은 죽게 됩니다

그 잔치가 바벨론성의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바벨론과 벨사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니엘이 바친 이사야서를 본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에서 귀환하도록 하게 됩니다. 다니엘 역시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5. That very night, Belshazzar is slain. The banquet becomes the direct cause of the fall of Babylon, sending both the empire and Belshazzar into the shadows of history. Later, Cyrus reads the Book of Isaiah presented by Daniel and allows the Israelites to return from captivity. Daniel, too, was a protagonist in God's history.

6.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자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알지도 듣지도 호흡하지도 못하는 금은동철석의 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린 바 될 때 우리도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6. Let us be used by God. Indeed. When we are held in the hand of the living God—not idols of gold, silver, bronze, iron, or stone that can neither know, hear, nor breathe—we too can becom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당시 (2012년에 썼던 개인적인 성찰 - 시북의 이야기도 한영버전으로 함께 실어 봅니다.)

[개인적인 성찰] 현대판 주지육림과 경고를 수용하는 삶

[Personal Reflection] Modern Indulgence and a Life Open to Correction

1. 현대판 주지육림 (Modern-day Indulgence)

우리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마음 한편에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고기와 술이 가득한 잔치만이 주지육림은 아닐 것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집과 좋은 차, 안락한 직장, 그리고 나에게만 편안한 환경 등, 우리는 끊임없이 더 안락한 것만을 좇아 숨어들곤 합니다.

Human beings, both past and present, perhaps live with a hidden dream of "Juji-yuklim" (a life of extreme luxury and indulgence). Such indulgence is not merely a feast overflowing with meat and wine. Seeking fine houses, premium cars, comfortable jobs, and ideal surroundings, we constantly run toward the illusions of ease and comfort.

2. 호사스러움을 경계하시는 이유 (Why God Cautions Against Luxury)

삼국지의 동탁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허무하게 사라졌듯, 성경 속 벨사살 왕 역시 그 화려한 유흥이 파멸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이토록 인간의 호사스러움을 경계하시는 걸까요? 모세 역시 화려한 왕궁을 떠나 고독한 광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참 간단합니다. 내가 너무 편안하고 사치스러워지면, 내 삶에 더 이상 신도 필요 없고 내 곁의 타인도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Just as Dong Zhuo in the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vanished into the shadows of history while enjoying a luxurious life, King Belshazzar's glamorous revelry became the direct catalyst for his ruin. Why does God guard so strictly against our extravagance? Even Moses had to leave the splendid palace and head into the lonely wilderness. The reason is profoundly simple: when we become too comfortable and self-sufficient, we feel no need for God, nor do we feel any need for the neighbors beside us.

3. 예수님의 선택과 관계의 소중함 (Jesus' Choice and the Value of Relationships)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삶은 참 독특했습니다. 스스로는 피하고 싶으셨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고, 무엇보다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셨고,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In that sense, the life of Jesus was uniquely distinct. He quietly walked the path of the cross—a path He naturally wished to avoid—and above all, cherished "relationships." He returned to Peter, who had betrayed Him, asking him to "feed my sheep," and through the story of the Prodigal Son, He beautifully illustrated God's heart for restoring broken bonds.

4. 귀를 막은 우리들의 착각 (Our Illusion of Closing Our Ears)

하나님은 지금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분의 손길과 온기를 표현하고 계십니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염려하지 마라, 두려워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바벨론의 박사들처럼, 우리는 스스로 무척 똑똑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신앙인조차도 그 다정한 말씀들을 무시한 채, 그저 내가 편한 대로, 내 멋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니까요.

Even now, God expresses His touch and warmth through His written Word: "Rejoice, pray, give thanks, do not worry,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Yet, like the wise men of Babylon in the text, we often fall into the illusion of our own cleverness. At times, even believers ignore these tender words, choosing instead to live as we please, seeking only our own convenience.

5. 나의 고백과 소망 (My Confession and Aspiration)

주지육림의 안락함만을 꿈꾸며 내 편한 대로 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타인의 정당한 비판을 겸손히 수용하고, 삶의 경고를 민감하게 인식할 줄 아는 성숙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저의 진솔한 꿈입니다. 경고를 무시하는 인생은 결국 위태로운 비행을 마주할 수밖에 없음을, 오늘도 마음 깊이 되새겨봅니다.

Rather than chasing the comfort of luxury and living a careless life for mere convenience, I desire to be a person of truth—one who enjoys genuine peace free from worry. It is my sincere dream to become a mature leader who can humbly accept the valid criticisms of others and remain sensitive to life's warnings. I remind myself deeply today that a life that ignores warnings is bound to face an unsteady flight.


2026년의 생각을 끝으로 담습니다.

제법 시간이 지났네요.
성숙한 머리가 되겠다는 꿈을 가감없이 드러낼 줄 알았던 무모한 용기가 부럽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저는 언제부터 인가, 그냥 맨 뒤에서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을 함께 오르거나, 내려올 때는, 앞장서는 대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맨 뒤에서 챙기며 오르는 사람 역시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제 저는 더이상 못가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금 봅니다.

염려 없는 평안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삶의 경고를 정확히 인식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 기도응답과 실현을 바라면서, 남은 생이 기쁘기만을 바랍니다.
신앙의 자신감 대신에, 두 발은 내려와 버린 모습이 되어갑니다.

이제는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씨앗을 심습니다. 수확은 훗날의 일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대한민국 이미 망했어요! 라는 유명한 외침이 큰 경고로 선명했으니까요.

그러면 무엇을 해야할 지 분명합니다.
조금만 공부하기, 쓴소리도 담을 수 있기 입니다.

쓴소리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떠나갈 지도 모릅니다.
당장 십계명만을 떠올려봐도, 재미라는 건 별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 하나님! 제가 이제 분명히 주님의 계획을 봤습니다!
라는 명철함에 좀 더 가까이 가보고 싶습니다. 이 바람은 아주 멀게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가장 발전하고 있는 멋지고 눈부신 계절이 아니라,
동력을 잃어서, 그 미래를 지금 간절하게 찾고 있는 혹독한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2026년,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맑아졌으면, 다만 기도합니다.
- 2026. 06. 09. 시북. (설교원고 2004년 - 다니엘서 설교 중에서)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무화과 저주 사건 (The Cursing of the Fig Tree) - 홍종일목사

 제 1부 시작 1부: 무성한 잎사귀의 환상 (The Illusion of the Lush Leaves) 오늘 우리는 한 그루 무화과나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사랑과 숨겨진 고뇌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Today, starting from a single fig tree, we desire to trace back and gaze upon the deep love and silent agony of our Lord. 📖 성경 본문 (The Scripture) 마가복음 (Mark)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Seeing at a distance a fig tree in leaf, He went to see if perhaps He would find anything on it. When He came to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for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마태복음 (Matthew)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Seeing a lone fig tree by the wayside, He came to it and found nothing on it except leaves only; and He said to it, "No longer shall there ever be any fruit from you." And at once the fig tree withered. ✒️ 한영 병기 강단 메시지 (Bilingual Sermon Message) 오늘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승리의 행진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록한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

시편 1편 1절 묵상 [2026]

시편 1편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제가 멋진 글로 시작하려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예쁜 청년의 시절은 있을테고, 저는 마음이 반짝이는 아가씨를 좋아했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컵에 물이 비어 있는 것이 신앙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때의 그녀는 미소 지었고, 이 추억은 나에게 소중한 행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체로 교만함이 나쁜 죄라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보다 자신이 못난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 입니다. 그런데 이웃 보다는 조금 낫기를, 혹은 확실히 뛰어난 모습이 되기를 아주 깊이 원합니다. 이 사례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항상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첫 글에서 저는 부서질 필요가 있겠네요. 하나님 믿는 사람이 왜 그래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합리화 할 수 있었습니다. 뭐, 사람이 완벽할 수 없는걸요. 책 읽는 사람이 왜 그래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아픈 곳에 맞았습니다. 많이 아는 것과 삶의 실천은 별개의 영역 입니다. 이제 시편 1편 1절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마치 사람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쉬운 방법이 있으면 좋아합니다. 죄는 종류 별로 달콤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이미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인 오라 하실 때, 나를 불러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나갑니다. 알려져 있듯 링컨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아들에게 성경책을 전해줍니다. 링컨은 괴로움을 선물 받았고, 성경책의 소중함이 참으로 귀중했을 겁니다. 우리가 아는 링컨 말고, 그 뒷면의 링컨은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칩니다. 저는 어머니를 수 년 전에, 잃었습니다. 오랜 간병이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었죠. 그런데 완고한 아버지는 그 때부터 교회를 열심...

자기소개 작가 시북

작가 시북 경쾌하게 기계식 키보드로 두드려 보고 싶었습니다. 20대 시절의 꿈이었습니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실은 블로그 생활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기 구글 블로그 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547만 카운터를 자랑했습니다. 제법 똑똑해진 제미나이 프로 에게 물어보니 상위 1% 블로그 정도는 된다고 하네요. 확실히 대형 포털 메인 화면에 노출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꽤 뿌듯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버리기로 했습니다. 다시 제로부터 시작하기로 결단해 버렸습니다. 20대 시절 사 놓았던 추억의 도메인을 이 곳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하자 조금은 설렙니다. 글은 남는다 이 점이 매력이었습니다. 너는 글을 잘 쓰는구나 한결 같은 칭찬이 계속되자 이것을 작은 달란트(재능)로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내가 선물 받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1,000만 카운터를 찍어보고 싶습니다! 라고 답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달라졌습니다. 병이 깊이 들고, 목표들이 차례 차례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힘 - 바벨탑 쌓기를 멈추고, 다른 길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우 감사합니다. 미래의 누군가 에게 제 글이 닿기를 바랍니다. 10년 뒤, 누군가 우연히 글을 읽고, 잠시 힘을 낸다면 저는 정말 기쁠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미소가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담아 노력해서 글이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날이 갈수록,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 날마다 배웁니다. 또렷함은 희미해져서, 그 좋아하던 책을 겨우 한 장 넘기기 어려워지고, 피아노에 도전한 멋진 모습은 주일 오전 마다 서투르고 어설픈 반주가 되어 나를 무너뜨립니다. 이번 구글 에서 맞이하는 블로거 도전은 충분히 제 인생을 걸만한 것입니다. 어느덧, 책을 낸다고 작가가 되는 세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한 태도로 글을 쓸 때, 얼마든지 미래의 누군가 에게 마음이 전해진다는 걸 압니다. 자신감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제 글 실력은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