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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열전] #2 이영표 - 노력으로 피어난 대한민국 명수비수

한국의 명수비수 계보에는 이영표 선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지션은 왼쪽 측면 수비수, 공격적인 모습이 매력적이었죠. 흥미롭게도 오른쪽 발로 올리는 크로스는 정확도가 뛰어나서 많은 득점에 관여했습니다. 헛다리 짚기 같은 특유의 드리블 기술이 있었죠. 이것은 개인기 자랑이 아닌, 오히려 공을 잘 관리하기 위한 속이기 모션이었습니다. 가령 상대방 선수 앞에서도, 몸을 재치 있게 움직이면서 돌파하는 모습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유럽의 어느 선수에게 지지 않을 만큼, 체력이 좋았던 점은 뛰어난 자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성 이라고 해야할까요? 민첩하게 경기장에서 움직였기에, 사랑 받던 선수 였습니다. 그리고, 알려져 있듯이 이영표 선수는 연습을 빠뜨리는 법이 없는 대단한 노력파 선수 였고요. 국가대표 100경기를 돌파했고, 역대 TOP10 에 남아있다지만... (2026년 기준) 기록 보다는 인생의 태도랄까요. 저에게는 축구를 넘어서 실패에 대한 감각을 배웠습니다. 다음은 이영표 선수 어록인, 2019년 인터뷰 중 일부 입니다. 이영표 선수 : 실패가 성공으로 연결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는 빨리 결과를 보려고 하는데 조급해선 안 돼요. 노력 즉, '땀의 양'도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고통'도 반드시 있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도요. 정리하면, 실패가 징검다리 라는 감각은 특별히 기록하고 싶은 "매우 소중한 관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내, 참고 견디는 시간, 그러므로 실패를 결코 가볍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긴 이야기를 상세히 쓰는 걸 좋아했지만, 듬뿍 덜어내면서 이만 마치려 합니다. 나는 노력과 좌절 없이, 익숙하게 반복된 하루에 안주한 지 얼마나 되었나? 이미 하루가 죽어버린 지는 또한 얼마나 되었나? 거울을 보니, 이미 늙어 약해져 있을 뿐이기에, 오히려 다시 고통 앞에 서봅니다. - 작가 시북 2026. 09. 09....

하나님의 손 (The Hand of God) - 홍종일목사

하나님의 손 설교 (2004년 창신교회 사역 청년부 설교 입니다. 홍종일 목사님)

하나님의 손 (The Hand of God)

본문: 다니엘 5:1-30 (Scripture: Daniel 5:1-30)

어떻게 하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진정한 역사의 주인으로부터 사용되어야 하겠지요. How can we becom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Naturally, we must be used by the true Master of history.

1. 벨사살은 방탕하고 음탕한 잔치를 벌입니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자존심과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그러나 그 잔치에 참석한 그 누구도 왕의 이러한 죄악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1. Belshazzar throws a profligate and immoral banquet. Here, he blasphemes God to satisfy his own pride and vanity. However, no one attending the banquet points out this wickedness of the king.

2.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계시를 내립니다

왕과 귀인들의 환락이 극에 달할 즈음 하나님의 손이 마침내 나타나 심판의 계시를 내립니다. 벨사살은 자기의 술사와 박사들을 불러들였지만 아무도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합니다.

2. The hand of God appears and delivers a revelation. Just as the pleasure of the king and his nobles reaches its peak, the hand of God finally appears to deliver a revelation of judgment. Belshazzar summons his magicians and wise men, but no one can read or interpret it.

3. 마침내 다니엘이 나타납니다

벨사살은 시세부득(時勢不得)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불러들여 후한 상을 약속하고 해독을 부탁하지만, 그 마음속에 여전히 유다인과 그 하나님을 멸시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습니다.

3. Finally, Daniel appears. In a desperate situation where he has no other choice, Belshazzar summons Daniel, promising lavish rewards and asking him to interpret the writing. Yet, he fails to hide his lingering contempt for the Judeans and their God.

4.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벽에 쓰인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이 글은 결코 황당한 글자가 아니라 그 나라 사람 중에서 조금만 공부했다면 알 수 있을 글자입니다. 그러나 같은 걸 보고서도 바벨론의 박사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는 그들이 죄악에 물들어 현실 비판의 안목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4. Mene, Mene, Tekel, Upharsin. The writing on the wall is "Mene, Mene, Tekel, Upharsin." These are by no means absurd words; they are characters that anyone in that nation with a bit of education could recognize. Yet, despite seeing the same thing, the wise men of Babylon do not understand. This is because they were stained with sin and had lost their eye for critical discernment of reality.

5. 그날 밤 벨사살은 죽게 됩니다

그 잔치가 바벨론성의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바벨론과 벨사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니엘이 바친 이사야서를 본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에서 귀환하도록 하게 됩니다. 다니엘 역시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5. That very night, Belshazzar is slain. The banquet becomes the direct cause of the fall of Babylon, sending both the empire and Belshazzar into the shadows of history. Later, Cyrus reads the Book of Isaiah presented by Daniel and allows the Israelites to return from captivity. Daniel, too, was a protagonist in God's history.

6.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자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알지도 듣지도 호흡하지도 못하는 금은동철석의 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린 바 될 때 우리도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6. Let us be used by God. Indeed. When we are held in the hand of the living God—not idols of gold, silver, bronze, iron, or stone that can neither know, hear, nor breathe—we too can become the protagonists of history.


당시 (2012년에 썼던 개인적인 성찰 - 시북의 이야기도 한영버전으로 함께 실어 봅니다.)

[개인적인 성찰] 현대판 주지육림과 경고를 수용하는 삶

[Personal Reflection] Modern Indulgence and a Life Open to Correction

1. 현대판 주지육림 (Modern-day Indulgence)

우리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마음 한편에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고기와 술이 가득한 잔치만이 주지육림은 아닐 것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집과 좋은 차, 안락한 직장, 그리고 나에게만 편안한 환경 등, 우리는 끊임없이 더 안락한 것만을 좇아 숨어들곤 합니다.

Human beings, both past and present, perhaps live with a hidden dream of "Juji-yuklim" (a life of extreme luxury and indulgence). Such indulgence is not merely a feast overflowing with meat and wine. Seeking fine houses, premium cars, comfortable jobs, and ideal surroundings, we constantly run toward the illusions of ease and comfort.

2. 호사스러움을 경계하시는 이유 (Why God Cautions Against Luxury)

삼국지의 동탁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허무하게 사라졌듯, 성경 속 벨사살 왕 역시 그 화려한 유흥이 파멸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이토록 인간의 호사스러움을 경계하시는 걸까요? 모세 역시 화려한 왕궁을 떠나 고독한 광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참 간단합니다. 내가 너무 편안하고 사치스러워지면, 내 삶에 더 이상 신도 필요 없고 내 곁의 타인도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Just as Dong Zhuo in the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vanished into the shadows of history while enjoying a luxurious life, King Belshazzar's glamorous revelry became the direct catalyst for his ruin. Why does God guard so strictly against our extravagance? Even Moses had to leave the splendid palace and head into the lonely wilderness. The reason is profoundly simple: when we become too comfortable and self-sufficient, we feel no need for God, nor do we feel any need for the neighbors beside us.

3. 예수님의 선택과 관계의 소중함 (Jesus' Choice and the Value of Relationships)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삶은 참 독특했습니다. 스스로는 피하고 싶으셨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고, 무엇보다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셨고,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In that sense, the life of Jesus was uniquely distinct. He quietly walked the path of the cross—a path He naturally wished to avoid—and above all, cherished "relationships." He returned to Peter, who had betrayed Him, asking him to "feed my sheep," and through the story of the Prodigal Son, He beautifully illustrated God's heart for restoring broken bonds.

4. 귀를 막은 우리들의 착각 (Our Illusion of Closing Our Ears)

하나님은 지금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분의 손길과 온기를 표현하고 계십니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염려하지 마라, 두려워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바벨론의 박사들처럼, 우리는 스스로 무척 똑똑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신앙인조차도 그 다정한 말씀들을 무시한 채, 그저 내가 편한 대로, 내 멋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니까요.

Even now, God expresses His touch and warmth through His written Word: "Rejoice, pray, give thanks, do not worry,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Yet, like the wise men of Babylon in the text, we often fall into the illusion of our own cleverness. At times, even believers ignore these tender words, choosing instead to live as we please, seeking only our own convenience.

5. 나의 고백과 소망 (My Confession and Aspiration)

주지육림의 안락함만을 꿈꾸며 내 편한 대로 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타인의 정당한 비판을 겸손히 수용하고, 삶의 경고를 민감하게 인식할 줄 아는 성숙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저의 진솔한 꿈입니다. 경고를 무시하는 인생은 결국 위태로운 비행을 마주할 수밖에 없음을, 오늘도 마음 깊이 되새겨봅니다.

Rather than chasing the comfort of luxury and living a careless life for mere convenience, I desire to be a person of truth—one who enjoys genuine peace free from worry. It is my sincere dream to become a mature leader who can humbly accept the valid criticisms of others and remain sensitive to life's warnings. I remind myself deeply today that a life that ignores warnings is bound to face an unsteady flight.


2026년의 생각을 끝으로 담습니다.

제법 시간이 지났네요.
성숙한 머리가 되겠다는 꿈을 가감없이 드러낼 줄 알았던 무모한 용기가 부럽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저는 언제부터 인가, 그냥 맨 뒤에서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을 함께 오르거나, 내려올 때는, 앞장서는 대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맨 뒤에서 챙기며 오르는 사람 역시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제 저는 더이상 못가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금 봅니다.

염려 없는 평안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삶의 경고를 정확히 인식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 기도응답과 실현을 바라면서, 남은 생이 기쁘기만을 바랍니다.
신앙의 자신감 대신에, 두 발은 내려와 버린 모습이 되어갑니다.

이제는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씨앗을 심습니다. 수확은 훗날의 일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대한민국 이미 망했어요! 라는 유명한 외침이 큰 경고로 선명했으니까요.

그러면 무엇을 해야할 지 분명합니다.
조금만 공부하기, 쓴소리도 담을 수 있기 입니다.

쓴소리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떠나갈 지도 모릅니다.
당장 십계명만을 떠올려봐도, 재미라는 건 별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 하나님! 제가 이제 분명히 주님의 계획을 봤습니다!
라는 명철함에 좀 더 가까이 가보고 싶습니다. 이 바람은 아주 멀게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가장 발전하고 있는 멋지고 눈부신 계절이 아니라,
동력을 잃어서, 그 미래를 지금 간절하게 찾고 있는 혹독한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2026년,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맑아졌으면, 다만 기도합니다.
- 2026. 06. 09. 시북. (설교원고 2004년 - 다니엘서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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