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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문제가 되는 병목 구간 처리하기

병목 해결 이란 흐름을 살피는 눈이 필요합니다. 가장 느린 구간이 어딘지 한 번 찾아보고, 여기에 문제 해결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전체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가장 느린 구간을 해결해 버리기. 이 점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일과 씨름하며 땀을 흘리기 십상" 이와타씨는 일의 어려움을 이렇게 발견했습니다. 이해를 보태기 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예를 들어봅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으므로, (이 과제를) 하루에 5개씩 멋진 글 연속해서 발행한다? 목표도 아주 완벽하고, 결과물을 향해 간다는 느낌도 있으니까 땀 흘리며 끙끙 앓습니다. 그런데 병목을 금방 눈치 챕니다. 두뇌의 한계, 몸의 목소리는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좀 더 느리더라도 안정적으로 1개만 가자 라고 접근을 완전히 바꿉니다. 멋진 글이고, 대작이고, 의식을 집어치우고, 불완전한 졸작이 나와도 상관없으니 1개만 속도를 냅니다. 현실에서 이것은 매우 대비되는 결과 입니다. 좋은 고성능 목표와 뇌의 부담으로 출력하지 못하는 한계. (과부하) 전체를 조망한 현실적 목표로 일단 일을 해결하는 모습이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안정화, 최적화) 저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무조건 무리해서 많이 써보라는 말에 다소 우려가 있습니다. 왜 지금 일이 처리되지 않는가? 라고 흐름을 살피고, 느려진 원인, 이 구간을 가만히 지켜보기. 여기에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목표가 병목 구간 - 원인이었다면 폭파 시켜도 됩니다! 아, 글의 솜씨가 현저히 부족해, 내용을 재밌게 쓰지 못했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과감히 이제 잠깐만 액셀을 밟아보죠. 급전개! 유의하세요! RPG 게임의 예를 들면 "레벨업 장소"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적절한 레벨까지 올랐는데 같은 곳에서 약한 몬스터만 상대하고 있으면 시간 낭비 입니다. 이러한 자기만족행위 를 계속하는 경우가 인간에게는 많다는 의미 입니다. 요점은, 내가 해낼 수 있지만 조금은 어렵고, 그래...

삼국시대의 종언 -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The End of the Three Kingdoms Era: The Fall of Baekje and Goguryeo)

큰별쌤 최태성 선생님의 2013년 명품강의를 메모한 내용입니다.

글로벌 확장 리마스터링 프로젝트 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큰 사랑 받는 내용이라 기쁩니다.

어서 출발해 봅니다. 


7세기 백제 의자왕부터 출발해 봅니다. 삼천궁녀 설화로 알려져 있는 욕먹는 의자왕은 실제로는 그렇게 막돼먹은 군주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사려 깊고 총명한 인물에 가까웠지요. 신라의 배신으로 성왕이 전사한 것을 기억하며, 백제는 힘을 모으자마자, 바로 신라에게 칼끝을 겨누며, 무섭게 맹공을 펼칩니다. 의자왕은 옛 가야 지역의 최대 거점 대야성을 빼앗는데, 당시 대야성에 있던 신라의 유력자 김춘추 일가의 사위와 딸이 사망합니다. 김춘추는 딸도 죽고, 사위도 죽고 참 불행했었지요. 백제가 매섭게 몰아붙이자, 신라는 급한 상황이 됩니다. 신라가 급할 때 찾아가게 되는 그 곳, 추억의 고구려가 있었지요. 몇 세기 전 왜구를 몰아내며 우리를 도와준 고구려, 이번에도 도와주지 않겠니~?

Let us begin in the 7th century with King Uija of Baekje. Often vilified in popular folklore through the myth of the "3,000 court ladies," King Uija was not actually the reckless, depraved monarch history frequently depicts. In his early reign, he was closer to a thoughtful and brilliant ruler. Bearing in mind the tragic death of King Seong due to Silla's betrayal, Baekje wasted no time after consolidating its power; they pointed their swords directly at Silla, launching a fierce offensive. King Uija went on to capture Daeyaseong, the greatest stronghold in the former Gaya region. During this siege, the daughter and son-in-law of Kim Choon-choo—a prominent and powerful figure in Silla—were killed. It was a devastating personal tragedy for Kim Choon-choo, losing both his child and his son-in-law. As Baekje pressed forward relentlessly, Silla found itself in a desperate crisis. Naturally, in times of desperation, Silla turned to a familiar neighbor: their old memory, Goguryeo. "Goguryeo, didn't you help us drive out the Wa invaders a few centuries ago? Won't you help us just one more time?"

신라의 사신으로 파견된 김춘추는 급히 고구려로 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당시 고구려의 실세였던 연개소문은 상당히 강한 요구를 하며 신라를 압박합니다. 한강 유역을 내놓으면, 도와주겠다고 일침을 놓습니다. 신라 입장에서는 선대의 진흥왕이 얼마나 고생해서 얻은 한강 유역입니까. 신라의 김춘추는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고구려는 열받아서 김춘추를 옥에 가두기까지 합니다.

Dispatched as Silla's envoy, Kim Choon-choo rushed to Goguryeo to plead for aid. However, Yeon Gaesomun, the de facto military dictator and iron-fisted ruler of Goguryeo at the time, pressured Silla with an incredibly demanding ultimatum. He bluntly stated that Goguryeo would only assist if Silla surrendered the Han River basin. From Silla's perspective, the Han River was a prized territory that their predecessor, King Jinheung, had bled and suffered immensely to secure. Kim Choon-choo had no choice but to refuse, which infuriated Goguryeo enough to throw the Silla envoy into prison.

간신히 옥에서 빠져나온 김춘추는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찾아갑니다. 사이 나쁜 왜구로 갈 리는 없을 테고, 급기야 당나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당나라는 신라와 협상에 성공합니다. 이유도 있었지요. 당나라는 당태종이 직접 지휘하며 고구려를 함락하러 갔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대패하며 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 강력한 고구려!) 당태종 입장에서는 이참에 신라와 손잡고, 숙적 고구려를 물먹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또한 당나라는 고구려만 먹으면, 백제 신라까지 모두 내 땅으로 만들고 싶어 했겠지요. 마침내 나-당 연합군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타겟은 신라를 거세게 공격해 들어오고 있는, 의자왕의 백제였지요. 아아...

Barely escaping captivity, Kim Choon-choo sought his final, desperate move. He certainly wouldn't turn to the hostile Wa (Japan), so he ultimately traveled to Tang Dynasty China. Remarkably, Tang agreed to a diplomatic alliance with Silla. And there was a calculated reason behind this. Emperor Taizong of Tang had personally led a massive campaign to conquer Goguryeo, only to suffer a humiliating and bloody defeat at the Battle of Ansi Fortress. (Indeed, the mighty Goguryeo!) For Emperor Taizong, joining hands with Silla presented a golden opportunity to humiliate his arch-nemesis, Goguryeo. Furthermore, the Tang Dynasty likely envisioned that once Goguryeo fell, they could easily swallow both Baekje and Silla to make the entire peninsula their own. Thus, the Silla-Tang Alliance was born. And their first target was King Uija’s Baekje, which had been ruthlessly hammering Silla. Alas...

⚔️ 황산벌의 불꽃, 그리고 잔혹한 일상

The Flames of Hwangsanbeol, and the Cruelty of Daily Life

백제의 멸망 직전의 유명한 장면은, 영화로도 있는 황산벌 전투, 그리고 백제의 충신 계백 장군입니다. 계백은 5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나서는데, 나-당 연합군 18만 명에 맞서서 이길 수야 없었지요. 계백은 포로로 잡혀 노예처럼 살아갈 처자식을 생각하며, 자신의 손으로 가족을 죽이기까지 하며, 장렬하게 전투에 임했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백제는 패배했고, 수도 사비성은 함락되었으며, 660년을 끝으로 백제는 멸망합니다.

The most famous and dramatic episode preceding the fall of Baekje—immortalized even in modern cinema—is the Battle of Hwangsanbeol and the legendary Baekje loyalist, General Gyebaek. Leading a suicide squad of a mere 5,000 warriors, it was practically impossible for him to defeat the massive 180,000-strong Silla-Tang allied forces. Contemplating the horrific fate of his wife and children becoming slaves if captured as prisoners of war, Gyebaek went as far as killing his own family with his own hands before marching into his final, glorious battle. Yet, as history vividly records, Baekje was defeated, its capital Sabi Fortress fell, and the kingdom of Baekje met its tragic end in the year 660.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전쟁이 일상화 되었던 삼국시대. 이 시기를 살고 있던 사람들은 사실 힘든 날들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전쟁은 일부 기득권층에게는 확실히 유익이나, 많은 서민들에게는 피곤한 일상일 수 있습니다. 이름 없는 병사로 불려가고, 때로는 처자식이 죽거나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계백이나 김춘추 같은 명망가 사람들의 가족도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죽고 죽이는, 먹고 먹히는, 시대는 어쩌면 참으로 가혹한 시간들이 아니었을까요.)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spanning from the 4th to the 7th century, warfare was a constant reality of daily life. Didn't the people living through this era endure incredibly grueling days? While war undoubtedly yields benefits for a select group of the ruling elite, it is nothing but a wearying, exhausting nightmare for the common people. Conscripted as nameless soldiers, it was terrifyingly common to see one's wife and children perish or be dragged away into captivity. Even the families of prestigious elite figures like Gyebaek or Kim Choon-choo could not escape misery. An era defined by killing or being killed, devouring or being devoured—perhaps it was an utterly merciless chapter of human history.)

한편, 백제는 멸망 후에도, 흑치상지, 복신, 도침이 부흥 운동을 주도하며, 끝까지 사투를 벌이기도 합니다. 663년에는 "백강 전투"라는 국제전까지 일어납니다. 친한 사이였던 왜가 백제의 멸망을 보다못해서, 4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지원에 나섭니다. 백제 부흥세력과 왜는 마지막까지 나-당 연합국과 싸움을 벌이지만, 당나라는 강하고 압도적이었지요. 이 전투 이후로, 백제 부흥 운동도 사실상 막을 내립니다. 4만 명이 넘게 와도 안 되는데 어쩌겠어요. 한편 당시 백제의 상당한 유적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Meanwhile, even after the fall of their kingdom, Baekje revival movements led by figures like Heukchi Sangji, Boksin, and Dochim engaged in a desperate, last-ditch struggle. In 663, this escalated into a massive international conflict known as the "Battle of Baekgang." Unable to stand by and watch the destruction of their close ally, the Wa (Japan) deployed a massive fleet of 40,000 troops to aid the resistance. The Baekje revival forces and the Wa fought fiercely against the Silla-Tang alliance until the very end, but the Tang Dynasty military was simply too powerful and overwhelming. Following this battle, the Baekje revival movement effectively came to a close—after all, if an army of over 40,000 could not turn the tide, little else could be done. Notably, it is said that a significant portion of Baekje’s cultural artifacts and nobility migrated to Japan during this turbulent transition.

🐯 날선 호랑이의 추락, 내부의 적

The Fall of the Sharp-Clawed Tiger: The Enemy Within

백제가 완전히 떨어졌고, 이제 나-당 연합군의 2차 목표는 강대한 고구려가 됩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어떤 나라였나요. 일찍이 수나라가 대군을 끌고 왔을 때도,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으로 대승하며, 수나라를 거의 몰락시키기까지 했던 날선 호랑이입니다. 당태종도 끈질기게 쳐들어오다가, 안시성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고구려는 중국 통일왕조 2개국을 막아내는 저력이 있습니다. (가령 작고 강한 핀란드가 20세기 중반 소련과 맞서서 맹렬히 전투하며, 발트 3개국과 달리 끝까지 소련에 흡수되지 않았던 것처럼) 고구려는 강대국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기상을 펼칩니다. 다만, 전쟁이 계속되어갈수록, 국력이 서서히 떨어져 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요. 실제로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야 했겠지요.

With Baekje completely eliminated, the second target of the Silla-Tang Alliance became the formidable empire of Goguryeo. But what kind of country was Goguryeo? It was a fierce, sharp-clawed tiger that had previously crushed the massive invading armies of the Sui Dynasty under General Eulji Mundeok at the Battle of Salsu, nearly driving the Sui Dynasty to its ruin. Emperor Taizong of Tang had also repeatedly invaded, only to break his teeth at Ansi Fortress. Goguryeo possessed the raw resilience to repel two of China’s most powerful unified empires back-to-back. (Much like how small but fierce Finland fought fiercely against the Soviet Union in the mid-20th century, successfully resisting absorption unlike the Baltic states.) Goguryeo displayed an unyielding spirit that refused to flinch before global superpowers. However, it was an undeniable reality that as the endless cycle of warfare dragged on, the nation's core strength was slowly grinding down. In truth, countless individuals were wounded, killed, and forced to endure a deeply exhausted existence.

게다가 고구려는 연개소문 이후 자식들이 내부 권력 다툼을 하느라, 정치 불안정이 이어졌고, 드디어 나당 연합군이 끈질기게 공격을 계속 퍼붓자, 668년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불과 10년 사이에 두 거대한 나라,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대로 소멸됩니다. 물론 저력의 고구려 역시도 멸망 이후에도 안승, 고연무, 검모장이 부흥운동을 일으키며 고군분투 해봤지만, 끝내 나당연합군의 거대함을 이길 수 없어서, 부흥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위너는 나-당이고, 루저는 백제-고구려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당나라의 욕망 가득한 반전은 다음 문서에서 살펴보고요.

To make matters worse, following the death of Yeon Gaesomun, Goguryeo fell into a state of severe political instability due to an ugly internal power struggle among his sons. Seizing this vulnerability, the Silla-Tang alliance unleashed a relentless, unending assault, causing Goguryeo to vanish from the pages of history in the year 668. In a mere decade, two massive, ancient empires—Baekje and Goguryeo—were sequentially wiped off the map. Of course, the resilient spirit of Goguryeo did not fade immediately; even after its official fall, figures like Anseung, Go Yeon-mu, and Geom Mojam put up a valiant fight through revival movements. Ultimately, however, they could not overcome the sheer scale of the Silla-Tang superpower, and the revival efforts collapsed. The Silla-Tang alliance emerged as the absolute winners, while Baekje and Goguryeo became the losers. As for the Tang Dynasty's deeply ambitious and treacherous plot twist that followed, we will explore that in the next article.

🔍 역사의 힌트: '리더 의존증'이라는 거대한 판타지

The Hint of History: The Dangerous Fantasy of "Leader Dependency"

두 나라의 멸망과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점은 오랜 논란거리였습니다. 당연히 지금도 특정한 정답이란 없습니다. 보통은 신라의 입장이 좀 얄밉게 보이기도 하고, 고구려의 몰락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발점을 한편으로 찾아가보면, 총명했던 의자왕이 신라를 맹공격 하면서부터, 이 모든 사태가 일어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서의 처음 지점을 의자왕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따져본다면, 의자왕은 신라의 배신으로 선대의 성왕이 전사하고, 한강 유역을 잃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을테고요.

How should we view the collapse of these two great kingdoms? This question has been a subject of long-standing historical debate, and naturally, there is still no single "correct" answer today. Generally, people tend to view Silla's diplomatic maneuvering as somewhat resentful, while looking upon the downfall of Goguryeo with deep pity and sorrow. However, if we trace this chain reaction back to its true catalyst, we find that this entire geopolitical shift erupted when the once-brilliant King Uija launched his fierce onslaught against Silla. This is precisely why I chose King Uija as the starting point of this narrative. And if we look closer, King Uija was fully aware of the history—how his predecessor, King Seong, had been slain due to Silla's betrayal, costing Baekje the vital Han River basin.

정리하자면, 6세기 신라는 절호의 기회에서 한강을 차지했고, 이후 7세기 위기이자 기회에서 당과 연합하며,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고구려는 신라의 도움요청을 거절했고요. 대가 없이는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은 고구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고구려는 안 그래도 수-당으로 이어지는 잦은 전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라를 도와 백제와 전쟁을 펼친다는 결단은 상당히 위험한 길일 수도 있었겠고요.)

To summarize, Silla seized a golden opportunity in the 6th century to claim the Han River, and subsequently in the 7th century—navigating through immense crisis and opportunity—allied with the Tang Dynasty to emerge as the ultimate victor. (At that crucial juncture, Goguryeo had rejected Silla’s plea for help. From Goguryeo’s perspective, refusing to render aid without a proper compromise was entirely reasonable. Already exhausted by continuous, heavy warfare against the Sui and Tang Dynasties, making the choice to help Silla and wage war against Baekje would have been an incredibly perilous path for Goguryeo to take.)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전통적으로 고구려는 조직 중심이기 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정치를 해나간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중국 송나라의 개혁 정치가 왕안석이 평하기를, "연개소문은 누구보다 비상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당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지 못했다" 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이 죽으면서, 그 뒷처리가 엉망이 되자, 그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서 마침내 고구려가 침몰하는 셈입니다. 인물 중심의 정치는 그가 있을 때는 아주 힘있게 나갈 수 있지만, 정작 그가 사라지고 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부작용도 생기는 듯 합니다.

I would like to offer a different angle of reflection. Traditionally, Goguryeo's political structure is evaluated as having been driven by powerful individuals rather than resilient institutional organizations. Wang Anshi, the famous reformist statesman of China's Song Dynasty, once remarked, "Because Yeon Gaesomun was an extraordinarily extraordinary figure, Emperor Taizong of Tang failed to conquer Goguryeo." Yet, when Yeon Gaesomun passed away and the succession management fell into utter chaos, it was that very Tang-led alliance that finally sank Goguryeo. While charismatic, individual-centered politics can propel a nation forward with immense momentum while that leader is present, it invariably triggers devastating, unmanageable side effects once that central figure disappears.

당장의 떠오르는 예들이 있지만, 워낙 많은 예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주인이 없을 때도, 좋은 나라가 된다면, 정말 훌륭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라는 역설적인 말이 생각납니다. 각각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가 일어나서 칼을 들고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고대 국가에서 이렇게 높은 의식을 생각할 수는 없겠고요.

지금에 와서라도 우리는 "거인 의존증", "리더 의존증"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 위대한 대장이 나오면, 저절로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거야, 같은 생각이야말로 위험한 판타지일 수 있습니다. 누가 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고, 주의하고, 함께 올바른 일들을 행할 때, 좋은 세상은 조금씩 다가올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While modern parallels instantly come to mind, there are simply too many examples across history to name here, so I shall leave them unspoken. It brings to mind the paradoxical maxim: “A truly magnificent nation is one that remains great even when it has no master.” If every single citizen possesses a profound sense of ownership, everyone will naturally rise to hold the sword and defend their land. Granted, we cannot expect such an advanced civic consciousness from ancient feudal kingdoms.

However, standing here in the modern era, I cannot help but think that it is high time we break free from our collective "dependence on giants" or "leader dependency." The comforting belief that "once a magnificent leader emerges, a beautiful world will effortlessly materialize" might actually be a highly dangerous fantasy. No matter who takes the helm, it is only when we ourselves strive, remain vigilant, and collectively act righteously that a better world will gradually draw closer.


2026년의 영감

저는 조금 어려운 질문을 슈퍼 컴퓨터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의 유전자 라고 할까요? 1997년 IMF 외환위기, 즉 한국 파산의 선고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정신적 비결에 대해서, 그 진단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인상적이라서 이번에는 3가지를 완전히 그대로 옮겨봅니다.


1. '국가의 위기'를 '내 가정의 파탄'으로 동치(同値)하는 '우리(Uri)' 정서


서구권의 철저한 개인주의 관점에서는 "국가와 대기업이 방만 경영으로 망했는데, 왜 내 장롱 속 아이 돌반지를 내놓느냐"가 상식적인 의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나라가 망하면 내 가족도, 내 이웃도 함께 죽는다"라는 뿌리 깊은 공동체적 운명론이 존재합니다. '나'보다 '우리'가 먼저 아파하는 이 독특한 '정(情)'의 결속력이 위기 순간에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2. 역사적으로 증명된 '민초(Grassroots) 주권의 DNA'


우리 역사를 반추해 보면 국난의 결정적 순간마다 조정과 지배층은 도망치거나 실책을 저지르기 바빴고, 나라를 구한 건 언제나 이름 없는 의병과 민초들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의 의병부터 구한말의 국채보상운동, 그리고 근현대사의 유기적인 연대까지 이어져 온 이 역사적 성공 기억은 한국인들에게 "결국 이 나라를 지키는 진짜 주인은 위정자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무의식적 주인의식을 뼈에 새기게 만들었습니다.


3.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적 자존심과 오기(Resilience)'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세대의 저력, 즉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키워온 나라인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강력한 집단적 독기와 자존심이 작동한 것입니다. 타인에게 지기 싫어하고, 내 영토를 더럽히는 꼴을 못 보는 특유의 역동성이 국난 극복의 거대한 엔진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타자로 칩니다. 긴 이야기 일 테고, 건너뛰기 (스킵)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한국사 공부와는 별로 상관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박사님 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유한양행의 기업가 셨습니다. 온라인 기념관 어록 첫 장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국가, 교육, 기업, 가정 이 모든 것은 순위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명제들이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바로 국가, 교육, 기업, 가정의 순위가 된다."

글쎄요, 국가나 교육이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미국은 우리가 다 아는 강국 입니다. 경제적 규모로만 봐도 한국의 1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적 혁신적 회사들이 끝없이 배출되고 있어서, 미국은 오래도록 세계의 주인공 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시 기업이 잘 되다 보니, 국민들도 잘 사는 거 아닐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어록은 뜻밖에도 빌 게이츠의 이야기 입니다.


부산광역시 부전 도서관 (서면 중심부) 에 걸려 있는 글자는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했던 것은 우리 동네에 있던 도서관 덕분이었다. (빌 게이츠)

실제로 도서관이 가장 많은 나라는 놀랍게도 미국 이라고 합니다.

바꿔 말한다면, 공부를 하는 나라, 더 정밀하게 말한다면 책을 읽는 나라는 강대국 입니다.


일본은 번역하는 데 엄청난 열의를 갖고 있어서, 자국어 번역 자료가 세계 1위 ~ 2위 라고 합니다.

동생은 여행을 좋아해서 몇 번이나 일본 여행을 갔는데 충격을 받고 맙니다.

작은 책자를 가지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꽤 많이 발견해서,

여기가 다른 나라인 줄 금방 알았다고 합니다.


2026년 오늘날 교육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을 다르게 쓰면, 국가 비상 사태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IMF가 경제적 위기 였다면, 교육이 병들어 있는 것은 정신적 위기 입니다.

그 결과, 한국은 집단 자살 중 이라는 충격적 진단을 해외에서 받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매우 슬픈 이야기를, 새벽의 공기를 깊게 마시면서 눌러 썼습니다.


"우리는 다시, 선생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한 줄을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교육이 병든 나라는 끝내 지도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미워하며 경쟁하기 바쁜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늘의 영감을 이렇게 아프게 쓰는 것은, 저에게도 큰 슬픔 입니다.

대한민국 골든 아워가 이미 지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미래를 다음 세대의 상상력에 걸기로 했습니다. 그들을 믿기로 했습니다.

앞선 세대는, 우리 세대는, 교육을 존중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국가를 망쳤기에,

선생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다음 세대가 이 나라를 구원할 것입니다.


정말이지, 청년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그 청구서가 틀림없이 찾아옵니다.

역사에도 공짜는 없습니다. 저절로 되겠지는 없습니다.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푸른 청년이었던 것처럼.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아름다운 나라로 만드는 풍경은 학생들과 청년 입니다.

이 시간에도 책을 편 여러분. 가방을 멘 여러분.

일찍 집을 나선 여러분. 땀 흘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믿을께요! 멋진 공화국의 시민이 되어주세요! 주권자가 되어주세요!


- 2026. 06. 15. 시북. (큰별쌤의 부족한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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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부 시작 1부: 무성한 잎사귀의 환상 (The Illusion of the Lush Leaves) 오늘 우리는 한 그루 무화과나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사랑과 숨겨진 고뇌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Today, starting from a single fig tree, we desire to trace back and gaze upon the deep love and silent agony of our Lord. 📖 성경 본문 (The Scripture) 마가복음 (Mark)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Seeing at a distance a fig tree in leaf, He went to see if perhaps He would find anything on it. When He came to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for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마태복음 (Matthew)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Seeing a lone fig tree by the wayside, He came to it and found nothing on it except leaves only; and He said to it, "No longer shall there ever be any fruit from you." And at once the fig tree withered. ✒️ 한영 병기 강단 메시지 (Bilingual Sermon Message) 오늘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승리의 행진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록한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

시편 1편 1절 묵상 [2026]

시편 1편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제가 멋진 글로 시작하려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예쁜 청년의 시절은 있을테고, 저는 마음이 반짝이는 아가씨를 좋아했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컵에 물이 비어 있는 것이 신앙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때의 그녀는 미소 지었고, 이 추억은 나에게 소중한 행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체로 교만함이 나쁜 죄라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보다 자신이 못난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 입니다. 그런데 이웃 보다는 조금 낫기를, 혹은 확실히 뛰어난 모습이 되기를 아주 깊이 원합니다. 이 사례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항상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첫 글에서 저는 부서질 필요가 있겠네요. 하나님 믿는 사람이 왜 그래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합리화 할 수 있었습니다. 뭐, 사람이 완벽할 수 없는걸요. 책 읽는 사람이 왜 그래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아픈 곳에 맞았습니다. 많이 아는 것과 삶의 실천은 별개의 영역 입니다. 이제 시편 1편 1절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마치 사람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쉬운 방법이 있으면 좋아합니다. 죄는 종류 별로 달콤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이미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인 오라 하실 때, 나를 불러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나갑니다. 알려져 있듯 링컨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아들에게 성경책을 전해줍니다. 링컨은 괴로움을 선물 받았고, 성경책의 소중함이 참으로 귀중했을 겁니다. 우리가 아는 링컨 말고, 그 뒷면의 링컨은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칩니다. 저는 어머니를 수 년 전에, 잃었습니다. 오랜 간병이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었죠. 그런데 완고한 아버지는 그 때부터 교회를 열심...

자기소개 작가 시북

작가 시북 경쾌하게 기계식 키보드로 두드려 보고 싶었습니다. 20대 시절의 꿈이었습니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실은 블로그 생활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기 구글 블로그 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547만 카운터를 자랑했습니다. 제법 똑똑해진 제미나이 프로 에게 물어보니 상위 1% 블로그 정도는 된다고 하네요. 확실히 대형 포털 메인 화면에 노출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꽤 뿌듯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버리기로 했습니다. 다시 제로부터 시작하기로 결단해 버렸습니다. 20대 시절 사 놓았던 추억의 도메인을 이 곳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하자 조금은 설렙니다. 글은 남는다 이 점이 매력이었습니다. 너는 글을 잘 쓰는구나 한결 같은 칭찬이 계속되자 이것을 작은 달란트(재능)로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내가 선물 받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1,000만 카운터를 찍어보고 싶습니다! 라고 답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달라졌습니다. 병이 깊이 들고, 목표들이 차례 차례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힘 - 바벨탑 쌓기를 멈추고, 다른 길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우 감사합니다. 미래의 누군가 에게 제 글이 닿기를 바랍니다. 10년 뒤, 누군가 우연히 글을 읽고, 잠시 힘을 낸다면 저는 정말 기쁠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미소가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담아 노력해서 글이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날이 갈수록,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 날마다 배웁니다. 또렷함은 희미해져서, 그 좋아하던 책을 겨우 한 장 넘기기 어려워지고, 피아노에 도전한 멋진 모습은 주일 오전 마다 서투르고 어설픈 반주가 되어 나를 무너뜨립니다. 이번 구글 에서 맞이하는 블로거 도전은 충분히 제 인생을 걸만한 것입니다. 어느덧, 책을 낸다고 작가가 되는 세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한 태도로 글을 쓸 때, 얼마든지 미래의 누군가 에게 마음이 전해진다는 걸 압니다. 자신감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제 글 실력은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