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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이와타 사토루 CEO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접근합니다. 변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과 일한다. 자세한 내용은 모두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기에, 긴 생각을 거쳐야 합니다. 인과관계로 다가가면, 이와타씨는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면담 (대화) 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직원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태도는 신뢰감을 줍니다. 질문까지 독특합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라고 꼭 물어본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게임을 만들어 낸다는 단순한 철학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음악 공부를 할 때, 행복한 시절을 보낼 때, 명곡이 나왔다는 걸 많이 접했습니다. 며칠 전, 머리카락을 정돈하러 갔습니다. 원장님은 아직도 흰머리가 하나도 없다며 제법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세월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다만 고생을 안 해서 그렇죠! 라고 늘 웃어 넘깁니다. 그러고 보면 제 마음도 여러 번 변해왔습니다. 만약 19살 때, 계획했던 직업을 가졌다면 훨씬 고민이 깊었을 거 같습니다. 노력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다는 사회의 기본 공식 조차 따르지 않고, 분명히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은 있을 꺼야 라고 오기를 부렸던 젊은 날들. 만약 당시의 HAL연구소 혹은 닌텐도에 입사해서 저도 질문을 받는다면 지금은 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사실은 말한다면, 괴로웠던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건강은 듬뿍 잃어버렸고, 지금이 정말 황금의 시간 임을 알고 말았습니다. 과거가 발목 잡아도, 앞으로 갈 수 있음을 배우고 말았습니다. 미래가 잘 안 보여도,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음을 배우고 말았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멀리 멀리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자, 이상하리 만큼 아주 힘이 났습니다. 사회에서 흔히 즐겨 쓰는 말, 사람은 고쳐지지 않는다 라는 말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다른 생각이 좋습니다.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성장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6~7년이라는 긴 시간을 직원에게 질문하고, 또 이야기를 들으며 경영한 ...

백제의 찬란한 전성기와 애달픈 추락, 근초고왕과 성왕 이야기 (The Brilliant Peak and Tragic Fall of Baekje: The Tales of King Geunchogo and King Seong)

큰별쌤의 2013년 명품 강의를 메모했던 내용입니다.

글로벌 확장버전 이지만, 아직 제가 기술을 다루는 부족한 점이 많아서 완전하진 못합니다.

실수한 점이 있다면 저의 잘못이니 미리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그럼 이야기 시작합니다.


역사를 생각해 볼 때는 언제나 '연결고리'를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무슨 영향을 받았는가?", "당시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라는 배경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시공간을 넘어선 인간의 행동을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When reflecting on history, it is always crucial to keep the "connecting links" in mind. By looking deeper into the background—asking "Why did it happen?", "What influenced it?", and "What was the atmosphere like at the time?"—we can better understand human actions across time and space.

1. 부여의 피와 백제의 시작 (The Blood of Buyeo and the Genesis of Baekje)

오늘 백제를 살펴보기 앞서, 우리는 '부여'라는 뿌리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온 주몽에 의해 세워졌고, 옥저 역시 부여족의 한 갈래였습니다. 그렇다면 백제는 어떨까요? 백제 역시 고구려 계통의 세력이 한강 유역으로 내려와 세운 나라입니다.

간이 화살표를 그려본다면 [ 부여 → 고구려 → 백제 ]라는 거대한 전깃줄 같은 연결고리가 완성되는 셈이지요. 백제가 훗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기도 했던 것을 보면, 그들의 혈관 속에 부여에 대한 깊은 자부심이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위대했던 뿌리인 부여는 고구려가 대륙을 호령하던 5세기에 마침내 역사에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Before examining Baekje, we must first trace its roots back to "Buyeo." Goguryeo was founded by Jumong, who hailed from Buyeo, and Okjeo was also a branch of the Buyeo people. What about Baekje, then? Baekje was established by a faction from the Goguryeo lineage that migrated south to the Han River basin.

If we draw a simple timeline, a grand connection emerges like a live wire: [ Buyeo → Goguryeo → Baekje ]. Considering that Baekje later renamed itself "Nambuyeo" (Southern Buyeo), it is clear that a deep pride in their Buyeo ancestry flowed through their veins. This great root, Buyeo, finally met its end in the 5th century, just as Goguryeo was dominating the continent.

2. 세련된 멋과 단단한 기틀 (Sophisticated Grace and a Solid Foundation)

우리는 흔히 백제에 대해 은연중에 선입견을 품곤 합니다. '전라도 지역에 국한된 나라', 혹은 '어쩐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약하고 존재감이 없었던 나라'라는 식이지요.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신라 중심으로 서술되면서 백제사가 다소 축소된 경향이 있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백제는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백제의 출발지는 지금의 '서울(한성)'이었습니다. 백제인들은 이 한강 유역을 고향처럼 사랑했고, 그 풍요로움 속에서 백제만의 고유하고 세련된 고급문화를 피워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파한 아직기와 왕인 박사 역시 백제인이었습니다. 중국과의 거친 국경선 때문에 초기에 개혁이 더뎠던 고구려와 달리, 백제는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저력이 있었습니다.

We often harbor unconscious prejudices about Baekje, viewing it as a state confined merely to the Jeolla region, or as a somewhat weak entity lacking presence compared to Goguryeo or Silla. While Kim Bu-sik's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tended to downplay Baekje due to its Silla-centric perspective, a closer inspection reveals that Baekje was never a nation to be underestimated.

Baekje’s journey began in present-day Seoul (Hanseong). The people of Baekje loved this Han River region deeply as their homeland, and within its abundance, they blossomed a uniquely sophisticated and high-class culture. It was also Baekje scholars, such as Ajikgi and Wangin, who traveled to Japan to introduce the Analects of Confucius and the Thousand-Character Classic. Unlike Goguryeo, whose early reforms were hindered by its turbulent northern borders with China, Baekje possessed a latent strength that allowed it to develop at a terrifying speed once it gained momentum.

👑 3세기 고이왕의 빌드업 (The Built-up of King Goi in the 3rd Century) 3세기 고이왕이 등극하면서 백제는 6좌평과 16관등제를 정비하며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자리 잡습니다. 관직의 급수별로 공무원을 나누고 옷 색깔(관복)을 지정한 것인데, 이는 왕권을 강화하고 내부 시스템을 비약적으로 안정시켰습니다. 내부 체제가 단단해지자 백제는 곧바로 밖으로 눈을 돌려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낙랑을 공격하는 등, 3세기에 이미 위세 당당한 모습을 과시했습니다. (동시대의 고구려가 중국 위나라의 공격으로 고생하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With the ascension of King Goi in the 3rd century, Baekje established the 6 Jwapyeong (ministers) and the 16-rank bureaucratic system, firmly cementing itself as a centralized state. By categorizing officials by rank and designating specific uniform colors, the monarchy strengthened the royal authority and dramatically stabilized the internal system. Once the internal structure was solidified, Baekje immediately turned its gaze outward, seizing the Han River basin and launching attacks on Nakrang, flaunting its formidable might as early as the 3rd century. (This stood in stark contrast to Goguryeo, which was struggling under attacks from the Chinese state of Wei at the time.)

3. 4세기 한반도의 절대강자, 근초고왕 (The Absolute Monarch of the 4th Century: King Geunchogo)

4세기 중반, 마침내 정복군주로 이름 높은 '근초고왕'이 역사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의 과감한 남진 정책은 마한의 남은 영역을 통치권 아래 가두었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맹렬히 압박했습니다. 거침없는 진격 끝에 371년,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대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근초고왕의 영역은 한반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요서와 산둥 지방으로 진출했고, 일본 규슈 지역까지 뻗어 나가 상업 세력을 형성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4세기의 백제는 한성(서울)을 중심으로 화려한 전성기의 정점을 찍었으며, 왕위를 부자 상속할 만큼 왕권이 막강했습니다. 이후 침류왕 때 불교를 공인하며 정신적 결속까지 이뤄내게 됩니다.

In the mid-4th century, the legendary conqueror "King Geunchogo" finally emerged on the historical stage. His bold southern expansion brought the remaining territories of Mahan under his rule, while his northern campaigns relentlessly pressured Goguryeo. This unstoppable advance led to a monumental event in 371, where King Gogugwon of Goguryeo was killed in battle.

King Geunchogo’s influence reached far beyond the Korean Peninsula. Historical consensus suggests that he advanced into the Liaoxi and Shandong regions of China and extended his reach to Kyushu, Japan, establishing a powerful commercial network. Centered around Hanseong (Seoul), 4th-century Baekje marked the pinnacle of its golden age, possessing a royal authority strong enough to institutionalize father-to-son succession. Later, during the reign of King Chimnyu, the state officially recognized Buddhism, achieving spiritual solidarity.

💭 작가의 상상력: 거장의 미완성 과제 (The Writer's Imagination: An Unfinished Task) 여기서 잠시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왜 근초고왕은 당시 패배한 고구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았을까요? 만주 벌판까지 치고 올라가는 것이 백제라는 국가의 체급에 부담스러웠던 것일까요, 아니면 시대적 한계가 만든 판단 미스였을까요?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에 최초로 이름을 아로새긴 강인한 군주 근초고왕조차도, 먼 훗날 자신의 나라가 맞이할 가혹한 몰락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Let us pause and exercise our imagination here. Why did King Geunchogo stop short of completely destroying the defeated Goguryeo? Was charging up to the Manchurian plains too heavy a burden for Baekje's geopolitical capacity, or was it a miscalculation imposed by the limitations of the era? Even King Geunchogo, the fierce monarch who was the first of Baekje's kings to have his name engraved in both Chinese and Japanese historical records, could never have predicted the harsh downfall his nation would face in the distant future.

4. 칠지도와 왜국, 국경을 넘어선 찬란한 동맹 (The Chiljido and Wa: A Radiant Alliance Beyond Borders)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섬나라 '왜국'과의 관계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혹 민족주의적 시각에 갇혀 당시의 왜를 무조건 열등하게만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왜국이 백제로부터 선진 문물을 수입하고 가야에서 철기를 가져간 것은 사실이나, 군사적으로는 신라를 무력으로 집어삼킬 뻔했을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뜨거운 뇌관인 "칠지도(七支刀)"를 두고 한국은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위엄)한 것'이라 주장하고, 일본은 '백제왕이 바친(조공) 것'이라며 팽팽히 맞섭니다. 하지만 감정을 한 꺼풀 걷어내고 팩트 중심으로 바라보면, 이 칼은 두 나라가 얼마나 깊고 특수한 관계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거의 혈맹에 가까운 협력 관계였을 것입니다. 먼 훗날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몰락해 갈 때, 왜국에서 나라의 운명을 걸고 4만 명이라는 대군을 파견해 백제 부흥운동을 도왔다는 사실은, 두 나라가 단순한 무역 상대를 넘어 서로의 생존을 의지했던 뜨거운 동반자였음을 증명합니다.

At this point, we need to view the relationship with the island nation of "Wa" (Japan) through a balanced lens. While some tend to dismiss ancient Wa as entirely inferior due to nationalist biases, the reality was quite different. Although it is true that Wa imported advanced culture from Baekje and iron from Gaya, militarily it possessed a formidable strength, once nearly swallowing Silla through sheer military force.

Regarding the "Chiljido" (Seven-branched Sword), a hot-button issue in history, Korea claims it was a "bestowal" from the Baekje king to the King of Wa, while Japan asserts it was presented as "tribute." However, strip away the emotional bias and look at the facts: this sword is undeniable proof of how deep and special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nations truly was.

They were, in essence, a blood alliance. In the distant future, when Baekje was on the brink of total destruction by the Silla-Tang alliance, Wa risked its own national security to dispatch a massive army of 40,000 troops to aid the Baekje revival movement. This historic event proves that the two nations were not mere trading partners, but fierce allies who relied on each other for survival.

5. 5세기의 암흑기와 6세기 성왕의 위대한 재기 (The Dark 5th Century and King Seong's Grand Resurgence)

영원할 것 같던 백제의 태양은 5세기 고구려의 걸출한 쌍두마차,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등장하면서 거대한 먹구름에 갇히게 됩니다. 특히 장수왕의 강력한 남하 정책은 백제의 영토를 사정없이 집어삼켰고, 마침내 충주에 '중원고구려비'를 세우며 백제의 자존심을 짓밟았습니다.

백제의 오랜 심장 비명이었던 한성이 함락되었고 개로왕은 전사했습니다. 백제는 피난민처럼 수도를 방어에 최적화된 좁은 산성 지형인 웅진(공주)으로 옮기며 암울한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백제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 동성왕: 신라와 '나·제 동맹'을 결성하며 거대한 고구려에 맞설 외교적 방어벽을 칩니다.

  • 무령왕: 지방의 특수 행정 구역인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다시 단단하게 다집니다.

The sun of Baekje, which seemed eternal, was covered by dark clouds in the 5th century with the arrival of Goguryeo’s formidable duo: Gwanggaeto the Great and King Jangsu. In particular, King Jangsu's aggressive southern expansion swallowed Baekje's territories mercilessly, ultimately crushing Baekje’s pride by erecting the Jungwon Goguryeo Stele in Chungju.

Baekje’s long-standing heart, Hanseong, fell, and King Gaero was killed in battle. Like refugees, Baekje was forced to move its capital to Ungjin (Gongju), a cramped, mountainous terrain optimized only for defense, enduring a bleak era. Yet, the resilient Baekje refused to stay down.

  • King Dongseong: He forged the "Silla-Baekje Alliance," building a diplomatic shield against the monolithic power of Goguryeo.

  • King Muryeong: He dispatched royal family members to the "22 Damro" (special administrative districts) to suppress the aristocracy and fortify the royal authority once more.

6. 믿는 도끼와 외교의 냉혹함: 성왕의 비극 (The Betrayal and the Brutal Reality of Diplomacy: King Seong's Tragedy)

그리고 마침내 6세기, 백제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 '성왕(聖王)'이 등장합니다.

그는 방어 중심의 웅진을 버리고, 넓고 공격적인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기며 백제의 위대한 중흥을 선포합니다. 국호마저 '남부여'로 고치며 내부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은 성왕은,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신라의 젊은 군주 진흥왕과 손을 잡고 북진을 감행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백제는 마침내 빼앗겼던 고향, 한강 하류를 되찾으며 눈물겨운 승리를 맛봅니다.

And finally, in the 6th century, a name that can never be forgotten in Baekje’s history emerged: King Seong.

Abandoning the defense-oriented Ungjin, he relocated the capital to the spacious and strategically offensive Sabi (Buyeo), proclaiming the grand resurgence of Baekje. Even renaming the country "Nambuyeo" to unify internal solidarity, King Seong joined hands with Silla’s youthful monarch, King Jinheung, and marched north to reclaim the long-lost Han River basin. The campaign was a resounding success. Baekje finally tasted a tearful victory, recapturing its lost homeland along the lower reaches of the Han River.

💔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 (Stabbed in the Back by a Trusted Axe) 그러나 그 기쁨은 너무나도 짧았습니다. 신라의 재기 넘치는 어린 진흥왕은 차가운 배신을 선택했습니다. 백제가 한강을 되찾자마자 뒤통수를 치고 한강 유역 전체를 신라의 영토로 편입해 버린 것입니다.

외교란 이토록 무서운 세계입니다. 정의나 의리가 아닌, 오직 자국의 생존과 이익만을 위해 눈을 번뜩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바로 외교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배신감에 머리 뚜껑이 열린 성왕은 왕자까지 데리고 신라를 응징하기 위해 맹렬히 길을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관산성 전투에서 매복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비극 이후 백제는 서서히 나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However, that joy was agonizingly short-lived. Silla’s clever young King Jinheung opted for a cold-blooded betrayal. The moment Baekje reclaimed the Han River, Silla stabbed them in the back, annexing the entire Han River basin into Silla territory.

This is the terrifying reality of diplomacy. The diplomatic stage is an invisible battlefield where actors glare not for justice or loyalty, but solely for their own survival and self-interest. Consumed by a raging sense of betrayal, King Seong set out fiercely with his prince to punish Silla. Tragically, however, he was caught in an ambush at the Battle of Gwansan Fortress and met a miserable end. Following this tragedy, Baekje gradually descended into an irreversible decline.

✍️ 시북의 영감: 승자의 역사 뒤에 숨겨진 패기 (Seabook's Inspiration: The Grit Behind the History of Victors)

최태성 선생님은 백제의 역사를 두고 이런 재치 있고도 씁쓸한 비유를 드셨습니다. "젊었을 때 잘 나가다가, 중년에는 동업자와 함께 사업하다가 폭딱 망해버린 씁쓸한 인생"이라고 말이죠. "살면서 절대 보증 서지 말고, 동업하지 마라"는 인생의 대원칙을 우리는 백제의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사실 저 역시 과거에 믿는 도끼에 발등을 호되게 찍혀본 흉터가 있기에, 신라의 배신 앞에 분노하고 무너졌던 성왕의 처지가 어쩐지 남 일 같지 않고 가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역사는 대개 승자 위주로 기록되기에, 백제는 고구려의 압도적인 기상이나 신라의 최종 승리에 가려져 어쩐지 '약하고 불쌍한 나라'처럼 기억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살펴본 4세기 근초고왕의 거침없는 칼날과, 6세기 성왕이 보여준 치열하고도 조직적인 재기의 패기를 생각하면, 백제 역시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치열했던 위대한 국가였습니다.

국제 사회에는 룰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이 씁쓸한 진실. "가장 가까운 동업자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백제의 가슴 아픈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시리고도 혹독한 인생의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Teacher Choe Tae-seong offered a witty yet bitter analogy for Baekje’s history: "It is like a bitter life where one is highly successful in youth, but ends up completely bankrupt in mid-life due to a joint business partnership." Through Baekje, we learn the golden life lessons: "Never co-sign a loan, and never enter into a business partnership." Having carried my own painful scars from being stabbed in the back by a trusted axe in the past, King Seong’s furious collapse in the face of Silla’s betrayal resonates with me deeply, feeling profoundly personal.

Since history is usually written by the victors, Baekje is often eclipsed by Goguryeo’s overwhelming spirit or Silla’s ultimate triumph, remembering it as a somewhat "weak and pitiful nation." However, when we recall the unyielding blade of King Geunchogo in the 4th century and the fierce, organized grit of King Seong’s resurgence in the 6th century, it becomes clear that Baekje was a magnificent nation that burned more passionately than any other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Peninsula.

The bitter truth remains tha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s governed by the logic of might rather than rules. "Beware most of the partner closest to you." Perhaps this heartbreaking history of Baekje stands as the most chilling and rigorous life lesson thrown at us today.


2026년의 영감

슈퍼컴퓨터에게 1등 (승자) 만을 기억하려는 세상에 맞서서,

평범한 우리가 비교를 버리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조금 어렵게 첫째 답이 돌아왔습니다. 나의 닻 (선택권) 을 타인의 바다에 내리지 않는 것.

쉬운 설명을 다시 부탁하니, 이 컴퓨터 녀석 드디어 한여름의 더위를 먹고 말았습니다.


다들 유행을 따라 살아갈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시간을 잘 보내기) 을 고민해보자 입니다.

아니... 제 생각에는 유행하는 것 좀 해보는 것도 좋아보이는걸요. 공감대 형성도 될 수 있고요. 하하.


그냥 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게 직관적일 꺼 같습니다. 짧막한 스토리텔링을 넣겠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엘리트 대학 수석학생을 배출한 선생님께 피아노를 지도 받고 있습니다.

가끔 연습실에 가면, 베토벤의 음악 (예컨대 비창) 이나, 유명한 선율들이 아름답게 연주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이엘 연습곡도 한 번씩 봐야 합니다. (아주 늦은 나이에 피아노까지 도전했더니...!)


선생님은 두 가지를 일부러 힘주어 말합니다.

"시북님. 제 말 잘 들으셔야 해요. 비교하는 순간 작아져요. 절대 그러지 말고 당당히 앉으세요."

"백지 같은 출발에서 시작했다는 점이 좋아요. 자기가 좀 안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상해요."


때로는 내가 모른다는 인식이 매우 훌륭한 결과를 낳습니다. 착각이라는 색안경을 벗게 해줍니다.

즉 짧은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 비교하며 내 가치를 찾는 건 바보 되는 지름길 - 입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떤 분야를 못한다고 해도, 사람의 존엄은 그대로 멋진 것입니다.

피아노 선생님은 한없는 겸손으로 말했습니다.

"나는요. 피아노를 잘 가르치는 일 말고는 사실 잘 하는 게 없답니다."


그럼에도 살아가기, 여기에 인생의 힌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골프 선수이면서, 최고의 야구 타자이면서, 최고의 축구 선수는 인간의 길이 아닙니다.

EBS 방송에서 어느 사고로 팔을 잃었지만, 묵묵히 생계에 최선을 다하며 웃는 분을 봤습니다.

그 분은 그 어떤 책보다 귀한 한 마디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게 참 좋아요!"


일하면서 학교 다닐 때, 어느 단골 여학생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이 옆에 계시길래 저는 일부러 재치를 섞어 농담을 던졌습니다.

"가끔씩은 놀아도 괜찮아요." 학생과 어머니가 동시에 피식 한바탕 가볍게 웃고 말았습니다.


인과관계를 뜨개질 하듯 정리해 이어봅니다.

잘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당당히 우리는 살면 됩니다.

심지어 모든 분야를 잘하면 그건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는 건 공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노력하기 입니다. 힘들 때는 잠깐 쉬고, 다시 힘내어 가면 됩니다.


슈퍼 컴퓨터의 영감 (너 대문자 T니?) 에 화가 나버린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부끄럽습니다.

사실 저도 T 성향이었고, 학창시절 그 다정한 (한국 문학) 지도 교수님도 T 성향이었습니다.

잠시 오늘 만큼은 적극 F 를 탑재해 응원하겠습니다. "다친 곳은 없어요?"

힘든 마음, 지친 마음. 맞아요. 우리 그래도 힘냅시다.


- 2026. 06. 다정함을 담아. 리마스터링 프로젝트 시북. (언제나 큰별쌤의 제자) 인스타 10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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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부 시작 1부: 무성한 잎사귀의 환상 (The Illusion of the Lush Leaves) 오늘 우리는 한 그루 무화과나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사랑과 숨겨진 고뇌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Today, starting from a single fig tree, we desire to trace back and gaze upon the deep love and silent agony of our Lord. 📖 성경 본문 (The Scripture) 마가복음 (Mark)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Seeing at a distance a fig tree in leaf, He went to see if perhaps He would find anything on it. When He came to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for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마태복음 (Matthew)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Seeing a lone fig tree by the wayside, He came to it and found nothing on it except leaves only; and He said to it, "No longer shall there ever be any fruit from you." And at once the fig tree withered. ✒️ 한영 병기 강단 메시지 (Bilingual Sermon Message) 오늘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승리의 행진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록한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

시편 1편 1절 묵상 [2026]

시편 1편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제가 멋진 글로 시작하려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예쁜 청년의 시절은 있을테고, 저는 마음이 반짝이는 아가씨를 좋아했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컵에 물이 비어 있는 것이 신앙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때의 그녀는 미소 지었고, 이 추억은 나에게 소중한 행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체로 교만함이 나쁜 죄라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보다 자신이 못난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 입니다. 그런데 이웃 보다는 조금 낫기를, 혹은 확실히 뛰어난 모습이 되기를 아주 깊이 원합니다. 이 사례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항상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첫 글에서 저는 부서질 필요가 있겠네요. 하나님 믿는 사람이 왜 그래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합리화 할 수 있었습니다. 뭐, 사람이 완벽할 수 없는걸요. 책 읽는 사람이 왜 그래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아픈 곳에 맞았습니다. 많이 아는 것과 삶의 실천은 별개의 영역 입니다. 이제 시편 1편 1절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마치 사람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쉬운 방법이 있으면 좋아합니다. 죄는 종류 별로 달콤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이미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인 오라 하실 때, 나를 불러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나갑니다. 알려져 있듯 링컨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아들에게 성경책을 전해줍니다. 링컨은 괴로움을 선물 받았고, 성경책의 소중함이 참으로 귀중했을 겁니다. 우리가 아는 링컨 말고, 그 뒷면의 링컨은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칩니다. 저는 어머니를 수 년 전에, 잃었습니다. 오랜 간병이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었죠. 그런데 완고한 아버지는 그 때부터 교회를 열심...

자기소개 작가 시북

작가 시북 경쾌하게 기계식 키보드로 두드려 보고 싶었습니다. 20대 시절의 꿈이었습니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실은 블로그 생활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기 구글 블로그 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547만 카운터를 자랑했습니다. 제법 똑똑해진 제미나이 프로 에게 물어보니 상위 1% 블로그 정도는 된다고 하네요. 확실히 대형 포털 메인 화면에 노출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꽤 뿌듯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버리기로 했습니다. 다시 제로부터 시작하기로 결단해 버렸습니다. 20대 시절 사 놓았던 추억의 도메인을 이 곳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하자 조금은 설렙니다. 글은 남는다 이 점이 매력이었습니다. 너는 글을 잘 쓰는구나 한결 같은 칭찬이 계속되자 이것을 작은 달란트(재능)로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내가 선물 받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1,000만 카운터를 찍어보고 싶습니다! 라고 답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달라졌습니다. 병이 깊이 들고, 목표들이 차례 차례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힘 - 바벨탑 쌓기를 멈추고, 다른 길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우 감사합니다. 미래의 누군가 에게 제 글이 닿기를 바랍니다. 10년 뒤, 누군가 우연히 글을 읽고, 잠시 힘을 낸다면 저는 정말 기쁠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미소가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담아 노력해서 글이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날이 갈수록,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 날마다 배웁니다. 또렷함은 희미해져서, 그 좋아하던 책을 겨우 한 장 넘기기 어려워지고, 피아노에 도전한 멋진 모습은 주일 오전 마다 서투르고 어설픈 반주가 되어 나를 무너뜨립니다. 이번 구글 에서 맞이하는 블로거 도전은 충분히 제 인생을 걸만한 것입니다. 어느덧, 책을 낸다고 작가가 되는 세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한 태도로 글을 쓸 때, 얼마든지 미래의 누군가 에게 마음이 전해진다는 걸 압니다. 자신감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제 글 실력은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