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레슨은 항상 긴장됩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죠.
저는 레슨 받은 개월 수를 세어보면 벌써 10개월이 되어 갑니다.
하필이면 딱 중간 지점인 바이엘 3권을 지나고 있습니다. 양손을 익히는 과정 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레슨 도중에 뇌정지가 온 적도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낮은 음 자리표를 간신히 읽게 되었지만, 양손은 여전히 어려운 벽입니다.
오늘은 원장 선생님과 혹독한 낮은 음 자리표 (왼손 연습) 에 들어갔습니다.
솔솔 시시 도도 라라 레레... 자 여기 대목은 두 음을 짚고. 한 번 집중하시고요. 손가락 위치 보시고요.
원장님은 레슨의 감각을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악보 바로 다음 구간까지는 볼 수 있어야 겠네요."
한 번에 하나 씩 이라는 말은 피아노의 세계에서도 훌륭한 팁 이 됩니다.
그렇게 훈련 받은 내용들은 차근차근 쌓였고, 이제는 저 피아노 백지 인데요? 라고 말하면 혼납니다.
이제부터는 양손을 훈련하면서, 샵과 플랫 구간도 칠 줄 알아야 합니다.
레슨의 긴장감이 더해져서, 여러 번 반복하는데도 실수 연발!
원장님은 화내시지 않으십니다. 저와는 달리 여유가 넘치며 톤도 안정적 입니다.
처음인데요 뭐. 몇 달 했는데 이 정도를 못 쳤다면 열 받았을 수도 있겠군요?
아시죠? 오늘 제가 체크한 대목들은 연습을 잊지 말고 해오셔야 합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유학파 원장님은 거침 없는 직선이며, 시원합니다.
그 점이 정말 저에게 맞았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아침을 잘 거르는 저를 위해서 식사 음식과 커피를 사주시기까지 합니다.
바쁘신 원장님은 일정을 위해 떠나시고, 혼자 조용히 학원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악보도 없이 무턱대고 어메이징 그레이스 혹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을 즐겁게 눌러봅니다.
이게 가능하다는 게, 저 스스로도 황당하기도 합니다. (물론 정확한 양손 악보 위치는 아닙니다.)
저의 작은 만족이 깊어갈수록, 원장님은 엄격하게 레슨 합니다.
이번 시간은 대충 넘어갈 줄 알았죠? 그럴 순 없답니다. 진도는 빠르더라도, 대충은 없습니다!
또 집에 있는 디지털 피아노 앞에서 여러 번 좌절해야 합니다.
저는 독일 속담을 좋아합니다. 실수를 통해서 비로소 성장한다 는 짧은 이야기 입니다.
틀리면 안 돼 를 무척 강조하는 한국 문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레슨 시간은 늘 금방 지나갑니다. 밀도 있는 30~40분은 마치 5분의 선율 처럼 느껴집니다.
피아노를 좀 더 좋아해볼 진지한 마음을 먹고, 집에 있는 낡은 게임까지 팔아가며 정성을 쏟습니다.
그럴 수록, 진실은 선명합니다. 노력한 것 치고는, 아주 느리게 피아노 실력은 성장합니다.
제가 평범한 사람 - 범재 인 것을 톡톡히 깨닫게 해줍니다. 좌절을 선물해 준다는 점도 맘에 듭니다.
바이엘을, 그것도 마흔 넘어서 시작한 초보자의 일기 기록을 남긴다는 것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 피아노 시작 사연은 심지어 MBC 라디오에 짧게 소개까지 된 적이 있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기타리스트 이상순 DJ (이효리님의 남편) 님은 미소로 응원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개인적인 사연을 보내주시다니요." (방송국 사람들은 이런 사연까지 읽게 만들어!?)
저는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실망해가며, 아직은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오늘도 밝은 귀로 또박또박 말합니다.
"좋아요. 그래도, 실수했다고 해서, 소리까지 주눅 들어 가서는 안 된답니다. 자, 다시!"
인생에서 잘 한 것 중에 하나는 피아노 학원을 두드려 본 일입니다.
원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은 조금 표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는 언어를 잘 모르지만 독일어에는 당케 쉔 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쉔은 아름답다는 의미인데, 거기에 감사가 붙어 있습니다. 좀 더 소중한 감사 쯤 될까요?
레슨을 받고 나면, 언제나 시간이 아름다워 집니다.
아! 시간을 악기에 쏟고, 실수하는 과정도, "괜찮아" 라고 느끼게 됩니다.
역시 아무 실수 없이, 그냥 흘려 보내는 하루야 말로,
고대 그리스어인 크로노스 (무의미한 하루) 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에 의미를 더해준 좌절의 시간! 그 특별한 카이로스 시간에 다가갑니다.
내 손가락이 조금은 밉고, 원장님의 레슨은 따끔하지만,
식사는 맛있기만 하고 커피는 시원하고, 산다는 건 평범하지만 참 행복한 일입니다.
너무 운이 좋은 인생 후반 입니다.
기본 과정을 끝내갈 무렵에는, 곡의 난이도는 오르고, 변함없이 저는 부쩍 또 손이 엉켜 있을 겁니다.
작은 꿈 (당연히 이렇게 써놓고 사실은 엄청난 욕심) 백예린 산책을 즐겁게 쳐보는 그 날까지.
피아노 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긴 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6. 06. 10. 늦은 오후 시북. (구글 블로그 새 프로젝트 4일차를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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