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은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이 한 줄을 생각합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 초반 대목 입니다.
소명은 참 듣기 좋은 말입니다. 천직이란 말도 얼마나 아름답게 들립니까.
남을 가르쳐 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배우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라서, 지식을 전수하는 기쁨은 굉장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아! 혹시 이 정도까지 즐겁다니, 천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알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친구의 공부 계열 재능은 나보다 더 뛰어나구나 싶은 순간을 보았습니다.
이상한 일들은 계속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질문을 가져 왔습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나의 부족함에 울었습니다.
그 후에는 더 많이 준비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노력을 치열하게 했습니다.
조금 더, 경험의 옷을 입자, 우리 같이 한 번 생각해 볼래? 라고 되물었습니다.
나중에는 우와, 어려워. 모르겠구나. 라고 의도적인 물러섬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의 월등한 총명함과 맑은 순수함을 함께 보게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여러 번 겪은 뒤로,
저는 교사의 길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 먹었습니다.
학교 밖에서 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제법 좋은 방법을 매우 오래도록, 간절하게 찾아 나섰습니다.
관련 전공까지 마친 터라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가르치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저를 몹시 아끼던 교수님은 매우 아쉬워 하셨지만, 그럼에도 이 선택을 끝까지 응원해주셨습니다.
짧은 글을 닫으며,
큰 역설이 하나 있습니다. 길을 잃은 순간부터, 간절히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교사란 무엇인가? 에 질문을 집중할 때는 도서관에 있기가 그나마 편안했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길이 있는가? 조금 더 솔직한 질문을 던지면, 지식으로는 한계를 볼 때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공중파 방송을 짧게 보다가 많이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건강 정보인지, 위장된 광고 인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라는 외침과 확신은 진실인지 계획된 대본인지 오히려 혼란을 줍니다.
만 19살, 20살. 저에게도 청춘 시절은 있었습니다.
그 때의 꿈은 야망 처럼 컸는데, "세상을 바꿔보자" 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어쨌든 변하고 말았는데, 드디어 불신의 시대 서장이 열렸습니다.
훨씬 교묘하게 사람을 조종하려 드는구나. 그 통찰 만큼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잘못 되어가는 게 아닐까? 제 글은 이렇게 거칠게 마무리 됩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서,
기댈 만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길. 아마 저의 야망은 헛된 몽상이 아니었던 것만 같습니다.
- 2026. 06. 11.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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