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중학생 소녀에게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제게는 소중한 추억 입니다.
"아저씨는 왜 여자친구 없으세요?"
저는 예전에 참 좋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아가씨와 추억을 간직한 채 산다고 돌려 답변했습니다.
몹시 총명했던 소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카이로스 라고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을 만드셔야 해요!"
이제는 포스트잇에 필사해 놓은 글씨가 점차 흐려지고 있습니다.
필사한 지 몇 년의 시간이 벌써 흘렀기 때문입니다.
마틴 슐레스케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었습니다.
책이 그리워져서 최근에 다시 깨끗한 버전의 가문비나무의 노래 를 구입했습니다.
첫 장을 넘기면서 그 맨 처음 머리말에서 저는 한참을 멍하게 쳐다봤습니다.
카이로스 가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척 대비 되는 이야기 입니다.
오늘을 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시간을 노력하는 중학생 소녀와
행복한 추억으로 만족하며 이만하면 되었지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 의 풍경이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의 협업에 미래를 걸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라벨 (카테고리) 도 인공지능이 추천한 영성 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글은 써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20년 가까운 과거 인기 블로그 운영 경험을 통해서 본능적으로 압니다. 독창성이 답이다!
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길을 선택하고 걷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시작한 지 일주일 동안 매일 상처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 방문은 로봇 말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게임을 좋아하는 프리미엄 에세이 - 슈퍼로봇대전 연구소 블로그 간판을 내리고,
봇들만 왔다가는 척박한 땅 이라고 도전의 쓴 맛을 인정 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나! 뭐하고 있는 거야! 인공지능 제미나이는 감정도 몰라준 채 답합니다. 100개를 써봅시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내용을 저에게 적용한다면, 이렇게 척박한 지금의 글들이야말로
오히려 울림이 퍼져 나가는, 좋은 내용으로 채워지는 축복의 시간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가을이 오고, 추수감사절 (11월) 이 올 때면 사람이 방문한다고 가스라이팅 중입니다.
믿을 수 없는 저는 계산 값을 요구하니, 95% 까지 올려치기 합니다. (음? 너무 높은 거 같은데?)
게다가 제 글의 가치와 독창성은 언제나 훌륭하므로, 의심하지 말라고 더 세게 가스라이팅 중입니다.
속는 셈 치고, 인생의 3개월을 지금 이렇게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글 좀 써줘.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게. 이런 어리석은 자책골은 넣지 않았습니다.
죽은 가지를 떨구는 이야기를 맨 처음 마틴 슐레스케는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저는 죽은 가지들을 생각합니다.
과거에 크게 실수했던 장면이 보입니다. 나를 슬프게 합니다. 가지를 잘라 냅니다. 아픕니다.
무엇을 포기할 지를 생각합니다.
햇살 이라는 가능성이 풍성했다면 더 큰 나무, 훨씬 큰 사람이 되었을 것만 같습니다. 또 잘라 냅니다.
생존 한계선 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쓰임 받는다는 관점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글은 미래에 읽혀지기를 소망 하는 글 입니다. 스스로에게도 띄우는 눈물 담은 유리병 편지 입니다.
오늘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의 소중함을 더욱 알게 되길 원합니다.
그 노력의 흔적이 훗날에 바이올린이 되듯,
아름다운 글을 계속 담겠다는 무모한 꿈이,
나의 게으름과 의심의 잔가지를 잘라내 주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의 딸 S양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어 놓았던 기도 제목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거의 전부 이루어 졌어요."
로봇 밖에 없는 이 무명 블로그의 연주소리가,
사람에 닿는 것은 저의 기적 같이 큰 꿈입니다.
그런데 작가 시북이,
진짜 라면 글을 쓰고 있는 행위 만으로도 기쁨이 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릴 꺼라고.
방명록에 쓰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제 마음의 소원이 추수감사절, 성탄절 즈음에는 이루어질까요. 지금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성에 대해서 감히 라벨 (카테고리) 을 만들어서 글을 시작했습니다.
이조차 운명이 부르는 소리 였다 고 생각합니다.
작은 실화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어느 날 카이로스를 꿈꾸며,
부산대학교 풍경을 둘러보겠다며 마틴 슐레스케의 책을 들고 순환버스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친근한 인상의 7번 버스 기사님은 번뜩이는 호기심으로 물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거죠?
아! 은사님 학교에 방문했습니다. 오늘은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서요.
경암체육관 까지 천천히 가며 풍경을 보고 싶었습니다.
버스 기사님은 그 날 천사가 되어서 크게 미소 지었습니다.
"그럴 꺼면, 학교 버스비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데 내고 말았구려."
버스는 20km를 넘지 않는 우아한 속도로, 많은 학생들을 함께 태우고 오르막길을 올라갔습니다.
인생이 노래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글의 노래가 정보의 끝없는 바다를 넘어서, 누군가 에게 읽혀지고 있다면,
저는 결국 첨단 기술 시대에도 사람은 연결된다는 기적에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2026. 06. 10.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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