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다! 제 중학시절은 19살 부터 시작됩니다.
14살이 아니네요. 5년은 늦은 출발입니다. 뭐 어떻습니까. 이야기니까요!
금정 야학! 이름처럼, 그렇게 밤공기가 느껴지는 곳은 아닙니다.
표어는 "정성을 다하여" 라고 제법 진지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금정열린배움터 였습니다.
위치는 부곡시장 근처라서 찾아가기 좋았습니다.
즉 저는 운이 좋았던 거죠! 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창석 (가명) 선생님의 반가워하는 표정이 여전히 잊히지 않고 선명합니다.
따뜻한 말을 온기 가득 담아 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디보자, 이 정도를 이해하는구나?
너 아무래도 공부 재능이 느껴져.
당장 4월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치자.
2달이면 충분해. 농담하는 거 아냐!"
아! 선생님. 아직 봄이 오지도 않은 2월 이라고요! 중학교는 3년 과정이란 말입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는 저를, 금방 간파하신 창석 선생님.
특유의 인자하며 사람 좋은 큰 미소로 - 웃음과 자부심을 드러내십니다.
"시북아, 재밌게 한 번 들어보렴.
우리 야학에는 지금 사범대학교 선생님들도 많단다.
자자, 내일부터 매일 저녁에 공부하러 와.
일찍 와서 좀 놀아도 좋고. 편하게 공부해보자. 알겠지?"
몸둥이만 열아홉 청춘이지, 사실은 마음은 꼬마.
저는 입학부터 솔직히 매우 기뻤습니다.
"야! 너는 잘 할 수 있어"
라고 진심으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건,
게임 속 특급 최강 마법이나, 비밀의 회복 치유 물약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든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행운은 정말 이었습니다.
저기요 "쌤~~~!" 저는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끈질긴 질문조차, 선생님들은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즐겼다고 해야 할까? 얼마든지 그렇게 써도 좋을 것입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설명법 으로 저를 당황스럽게 웃기기도 하셨습니다.
"시북아, 재밌는 거 알려줄까? 교과서의 내용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네? 쌤? 교과서가 제일 중요하다고 저는 알고 있는데요?"
저는 발끈하며 되물었습니다. 나름 초등학교는 다녀본, 모범생입니다!
선생님은 웃으며 다음과 같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너는 안 믿겠지만, 교과서 라는 건 바뀌기도 한다는 거야.
가령, 대학에 가면,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길이라는 것은, 규정된 것인지도 몰라.
나는 네가 자유롭게 생각하면 좋겠어, 넓게 크게 깊이, 마음껏!"
선생님들의 의미 깊은 말들은,
제 마음을 말랑말랑 띄워주며,
때론 거센 파도처럼 다가왔습니다.
당시에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가르침이 하나 하나가 쌤들마다 파격적이고, 독특했습니다.
쉽게 쓰면 "관점"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셨다고 표현하면 딱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감정이 있네요!
제가 바라 본, 선생님들은 너무 멋있었습니다.
제 이상형은 그 때부터 변함이 없습니다. "똑똑하고, 스마트하고... 예쁘고. (독자님, 죄송합니다!)"
저는 애정을 받고, 또 받으며, 지식이 자라갔습니다. 무럭무럭, 쑥쑥!
2달 뒤 중학교 졸업 시험은 어땠을지 벌써 상상하실지도 모릅니다.
에이, 그런게 지금 뭐가 중요합니까. 학교 다니는 일이 재밌다는 걸 담고 싶었네요.
저는 야학을 다니며 조금씩 변해갑니다. 점점 선생님들의 눈부심을 조금씩 닮아갑니다.
'이 문제, 왜 이렇게 묻고 있는거지? 출제자의 의도가 뭐지?
이렇게 뻔한 답을 넘어선 답도 있을 수 있겠구나.
나도 어쩌면 대학에 가볼 수도 있다니, 대학 생활은 궁금한 걸.'
저의 호기심은 올라가기만 했고, 궁금한 걸 대놓고 다 묻고 다녔습니다.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주 창피하지만, 역시 재미를 위해 덧붙입니다.
참 똑똑하고 예쁜 선생님이 계셔서... (역사 교육과를 전공하신 신 선생님 이셨습니다.)
저는 수업 시간이 끝나자 손을 들고, 쓸데없는 질문까지 하고 맙니다.
"쌤 좋아하는 사람 (슬쩍 말하자면, 남자친구 or 애인) 있으세요!?"
이렇게 물었다가, 같이 공부했던, 선배 형에게 정말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야! 너! 한 대 맞을래! 곤란한 질문 좀 하지 마라! 그거 너무 선 넘었어!"
야학의 선생님은 고민에 잠깁니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답을 하십니다.
선생님은 회초리 대신에 잊지 못할 현답을 주셨습니다.
"좋은(?) 질문이야! 없단 말이지! 나는 사람과의 만남이 충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신 선생님! 너무 눈이 높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 조차 멋진 지혜였습니다.
상대방을 만나고자 할 때, 좋은 사람을 꿈꾸며, 살아갈 것.
그리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가도록, 노력할 것.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 황금률. 그 어떤 책보다 귀한 내용을, 변함없이 알려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갑니다.
길게 느껴졌던 야학의 3월 봄은... 다정하게 흘러갔고,
4월의 시험, 사실 겁나지 않았습니다.
2달간 특급 배움 열차를 타고, 편안하게 중학교 과정을 완수했으니까요.
너무 기뻐하시던 선생님들의 표정 속에서, 저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가르치는 보람이라는 것은, 제자가 잘 되었을 때도 빛나는 것 같습니다.
청출어람 이라는 한자어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고. 너무 좋았고.
"정성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대만큼 훌쩍 자란 것입니다.
야학선생님, 당신들께서 대학교에서 배우던 내용,
따뜻함을 넘어서 뜨겁기 까지 한 지식과 깨달음을,
넘치는 열정으로 저녁마다 와서 전수해 주셨으니까요.
짧은 의문이네요.
그 시절 나는, 공부를 하긴 했던 걸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선생님들과 웃고 떠들고 놀고,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그게 다였습니다.
저는 순진하게도 쌤들이 사주는 맛있는 음식에 침을 흘리고 좋아했습니다.
(사실은 때로는 일하며, 때로는 과외를 하면서 까지 번 돈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중학시절을 보냈습니다. 작은 기적을 보냈습니다.
열아홉 게임 소년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4장을 슬슬 마무리 하려 합니다.
만일 내게 나무를 베기 위해 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우선 나는 도끼를 가는 데 45분을 쓸 것이다. - 링컨
선생님들의 교육방식을 여전히 잊지 못합니다.
제가 질문으로 물어보면, 시원한 즉답을 주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A 관점이 있고, B 접근법이 있고, 심지어 C 까지 가능하다고 말씀하시고선,
그러면 너의 선택과 그 이유까지 물어보시곤 했습니다.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한 쪽으로만 보는 것은 참 편안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정말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생각합니다.
생각의 넓이가 자랐으면 하고, 아직도 욕심쟁이 입니다.
어느 야학 선생님은 터놓고 말했습니다.
"넌 삐딱한 게 좋다고 말했구나. 하지만 기본 방향도 좋지 않을까."
또 다른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비가 오는구나. 시북아, 넌 비를 어떻게 생각해?"
추억은 여전히 스치고 지나갑니다.
영화를 보고 단단히 감상에 젖어서, (영화 주인공이 된 듯! 우산을 던져두고!)
비를 맞으며 학교까지 온 날...
야학 선생님은 저를 보고 특별한 애칭까지 붙여주셨습니다.
"잘했어! 감기 들겠다. 앞으론 우산 챙기고!"
왜 그랬을까, 신 선생님의 그 잘했다는 말. "미쳤니?"가 아닌 "잘했어!" 라는 말.
왼손잡이가 있으면 재밌지 않겠니.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 필요는 없잖아.
미소까지 띄우시던 선생님의 밝은 표정이, 좋았습니다.
학창 시절이 끝난 나중에는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붕어빵 틀에서, 붕어빵만 열심히 찍어내면서, 예쁜 꽃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평균 지능지수 같은 낡은 개념은 허상의 신화가 되어 무너져 내립니다.
단지, 개개인이 특별할 뿐입니다.
세상을 훨씬 앞서간 사람들의 가르침을, 운 좋게 그것도 애정 가득 받게 되어,
저의 현실 레벨은 나도 모르게 올라갑니다. 경쾌한 게임 레벨업 소리 입니다.
좋은 사람은 이슬처럼 함께 하고 있어서,
벌써 그 가르침 덕분에 영혼이 이슬비에 젖어 있습니다.
인식이란, 이렇게 되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가 되어보면,
키워주신 부모님의 손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현실의 삶은, 어쩌면 게임 속 풍경보다, 훨씬 재밌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늦게 나마 교원자격증을 얻고,
어제 교수님 한 분께 감사편지를 보내고, 회신이 와서 기뻐하시던 모습으로 풍경은 마무리 됩니다.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야학 시절의 풍경은 열 배, 백 배나 소중한 추억처럼 느껴집니다.
창석 선생님, 예쁜 신 선생님, 그리고 제가 이름을 모두 숨겨 놓은 야학의 선생님들.
선생님들의 청춘을 "뜨겁게 보내며 헌신을 가르쳐주신" 많은 은사님들께 이 글을 헌정합니다.
- 2026. 06. 15. 시북.
아! 쿠키 글. (추신)
게임소년 방랑기인데 게임 이야기 좀 써야 하지 않겠냐고요?
사실은 있었는데 엄청 덜어냈습니다. 게임소년도 가끔은 공부 좀 하는게 좋을 꺼 같네요 :)
양해를 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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