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은영 (가명) 선생님은 나를 업고 달리고 있습니다.
나는 좀처럼 걸어지지 않았으니깐요.
젊은 여선생님은, 어째서 그렇게 까지 나를 사랑하고자 했을까요?
커다란 각오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겠어.'
말이 아니라 온기로 전해지던 따뜻한 추억입니다.
병약한 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교로 옮겨졌습니다.
이른바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중1, 중2. 꽃다운 나이.
그렇습니다, 중2병도 찾아온다는 사춘기 입니다.
남학교였지만, 감수성과 행동 선이 튀어나가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고,
어떤 친구들에게는 내 모습이 선을 넘는 반칙으로 충분히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네가 뭔데! 잘난 척이야! 공부 좀 하면 다야?"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쿵.
그 녀석의 커다란 발길질이 지나갑니다.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차분히 돌아보면,
저는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소 뜻밖의 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폭력에 앞장선 친구는,
정작 사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서른 살이 넘어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
그는 고단한 일을 하며, 여전히 거칠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자업자득, 아니면 인과응보라고 여기며,
어릴 적 원수에 대하여 마음으로 후련해 했지만,
이제는 굳이 아무 감정을 가질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인생의 출발점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은 약간 불편한 진실 입니다.
저는 출발점이 지나치게 좋았고,
그는 단지 출발점이 삐뚤어진 상태가 바로 잡아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입니다. 남 부럽지 않은 좋은 가정이 있었으니까요.
감상 대신 서둘러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중학교 1학년. 그 날의 싸움 이후.
저는 몇 번의 시도를 거쳤음에도,
몸은 점점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아픈 무릎은 굳어갔고, 화장실은 기어가야 했고,
소변은 몇 번씩 보는 게 때로는 귀찮게 느껴져,
소변통이 제 방 옆에 있기도 했습니다.
학교 자퇴서를 쓱쓱.
학교생활을 신나게 내던져 버립니다.
저의 방랑의 시작입니다.
주류 이탈자의 시선을 갖게 된 축복의 시작 이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신났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사실은, 평범하게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일상의 친구들이 퍽 부러웠습니다.
이제
저는 조금은 다른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일기장 앞면에, 두껍게 쓱쓱 썼습니다.
"인생은 모험이다."
그날부터, 제 상상 속 모험은
새로운 풍경을 맞이합니다.
친한 친구들은 학교를 마치고 놀러와 주었습니다.
물론, 실은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려고 온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함께 놀고 싶어서, 마음 써서 우리 집에 와준 게 어디인가요! 저는 고마워해야 합니다. 정말로.
이렇게, 게임소년이 탄생한 것 입니다!
몸이 더욱 불편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 줄었기에,
고통의 시간 속에서,
혼자 하는 게임들은 나의 침묵을 밝혀주었고,
축구와 야구, 농구까지... 스포츠 게임들은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아주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모님은 그 때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부를 하라고, 검정고시를 치라고, 어떤 대안도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때를 기다리듯이, 언제나 마음껏 놀아라.
이렇게 마음속으로 언제나 말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침묵으로 기다려주셨습니다.
이쯤에서 잠깐 고백을 꺼내봅니다.
은영 선생님은 음악을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지금 그토록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선생님이 전해주신 다정한 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록 수업은 일 년을 채 듣지 못했지만요.
시간을 통과해 지금 제 방에 디지털 피아노가 있다는 것을 알면,
글을 쓰며 브람스 음악을 듣고 계신 것을 알면,
아마 선생님은 꽤 웃을지도...
혹은 어쩌면 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고, 다정히 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 선생님, 당신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울듯이 말입니다.
글을 읽는 분들께는, 이 추억이 살짝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현실은 조금 비참한 측면이 있긴 했습니다.
저에게 14살, 15살, 16살은 - 고통이 반이고, 잠을 들기가 어려웠습니다.
진통제 몇 알을 먹어도, 통 잠이 안 오면,
늦은 밤 게임기에 전원을 넣곤 했습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드래곤퀘스트6, 파이널판타지6 같은 훌륭한 게임을 했던 추억이 흘러갑니다.
계속해서 강해지다 보니 우리 편 레벨은 99 였습니다. (아! 불쌍한 몬스터들!)
끝판왕 보다 심지어 우리 용사들이 훨씬 더 강했습니다.
그 시절, 시커먼 하구레 메탈 에게 회심의 일격을 신나게 날리곤 했습니다.
게임을 흔히 단순한 놀이로 이해하곤 하는데,
운 좋게도 제가 만난 게임들은 위로였습니다.
명작 RPG 롤플레잉 게임이 주는 특별한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드래곤퀘스트6의 중간보스는 대단히 어려웠기에,
그걸 돌파하는 느낌이 너무 기뻤습니다. (우와! 내가 이걸 해냈어!)
파이널판타지6은 한 번 세계가 멸망하는 이야기라서,
그 절망감 속을 사는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음악도 끝내주죠. (그래 나도 살아야지!)
저의 힘든 현실 세계가, 저기 상상 들판에는 더 슬프게 펼쳐져 있구나, 라는 멋진 선율이 되었습니다.
게임을 친구 삼아, 저의 밤은 모험이 되어서 깊어갔습니다.
드디어, 말썽 많던 무릎은, 시간이 흐르니 조금씩 나아져 갔습니다.
식탁 의자를 짚고서, 겨우 일어나던 순간은 특별했습니다.
걸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기쁨이라고 저는 이렇게 쓸 수 있는걸요.
그렇게 저는,
걷지 못한 시간 뒤편 에서도
운 좋게 기쁨의 불꽃이 꺼질 줄 몰랐습니다.
춤추듯 게임하고 살았습니다.
참 돌이켜 볼수록 감사한 일입니다.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따뜻함을 사랑했던
열일곱의 푸르른 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제 슬슬 걸을 차례 입니다.
...물론, 제 손엔 아직도 게임 패드가 잡혀 있군요!
파이널 판타지 6 대표 이미지를 재미로 함께 실으며 담백하게 끝맺습니다.
게임소년 방랑기 2장 긴 글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6. 06. 09. 시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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