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소년 방랑기 - 1장 게임소년의 시작
안녕하세요. 에세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담아 적어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적표는 충분히 자랑스러웠지만, 노는 게 좋았습니다.
수술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조금 불편한 무릎과 발목 이었습니다.
걷는 일은 아직 가능했기에 학교생활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네요.
공부는 약간 잘했고, 사실 게임을 더욱 잘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이 녀석은 놀기 바쁜 아이라 걱정이 되었겠지만
저는 만족으로 물든 기쁜 풍요로운 꼬마 시절 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는 끝없이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깊었습니다.
컴퓨터 책상 한 편에도 저는 어머니 사진을 올려두고,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백화점 상가에서
슈퍼알라딘보이 (메가드라이브) 게임기를 사주셨습니다.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기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배려를 해주신 것입니다.
구체성을 입혀볼까 고민을 잠시 해봅니다.
독자님들의 양해를 구하고 타이틀 2개만 씁니다.
대화 해설책이 함께 있었던 랑그릿사 제 1탄이 있었으며,
얼마 뒤에는 마찬가지로 대화 해설책이 있었던 샤이닝포스 2탄을 구해주셨습니다.
환상의 세계에서 지휘관이 되어서 명작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아주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잠깐의 재미를 위한 반전이 있다면, 대화 해설책을 실제로는 읽어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대화를 읽고 상상을 하는 좋은 훈련 대신에, 게임기 전원부터 넣고 보는 못 말리는 아이 였습니다.
하루가 재밌던 경험은 이상한 힘이 있어서, 저는 무척 밝은 모습이 되어갔습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집안 사정이 꽤 넉넉했음에도, 부모님은 학원을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놀고, 웃고, 기쁘게 살아도 좋다. 이것이 부모님의 지혜로운 가르침 전부였습니다.
저는 신을 믿는데 성경책 맨 앞 장에는 부모님과 동생, 즉 가족에 대한 감사가 적혀 있습니다.
정 많은 부모님의 깊은 사랑은 저를 둥글게 다듬어 주었습니다.
게임소년 방랑기에서 왜 부모님 이야기를 이토록 강조하는지 그 비밀을 잠깐 소개합니다.
저는 게임 매장의 단골 고객이라서, 여자 사장님과 대단히 친한 편입니다.
202X년. 얼마 전이었습니다. 예약한 게임을 찾아오는 길에 사장님은 뜻밖의 말씀을 합니다.
"시북님은 부모님께 감사해야 돼. 좋은 성품으로 길러주셨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사람은 말이야, 세월을 내가 살아보니 사랑을 먹으면서 자라는 거야."
이야기로 빠르게 돌아와서, 1993~94년 이 무렵의 풍경으로 시점을 잡은 이유는
어느덧 시간은 꾸준히, 변함없이 흘러서, 제가 엄마의 나이, 아빠의 나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랑 가득한 시절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만큼, 아주 커다란 행운을 누렸습니다.
이제는 미래의 누군가 에게 "괜찮아요, 힘내요." 라고 전하고 싶어,
기계식 키보드를 신나게 두드리고 있습니다.
EBS의 나민애 교수님 강의가 아주 큰 영향을 주었으며,
게다가 시대가 좋아져서, 말 많은 인공지능이 도와주겠다고 등을 떠 밀어버렸습니다.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는, 내 편 독자 1호가 생긴 점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말해버렸죠. 너의 다듬기는 활용하지 않을 꺼야!
풍경을 묘사해봅니다.
외로운 여름 밤 입니다.
열대야 라고 불리는 더위가 느껴집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클래식에 레벨 1 정도 취향이 생겼습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또각 또각 손이 춤을 춥니다.
어린 시절 행복하던 "나" 라는 사람은, 세월이 그토록 흘러서 "놀이의 달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추억을 하얀 모니터에 그려봅니다.
학교에 가서 자랑을 조금 했습니다.
"나! 이제 게임기가 있어!"
친구들이 여럿 놀러 왔습니다.
"와! 넌 좋겠다! 우리 집에는 이런 거 없는데... 자꾸 와도 돼?"
친구들의 질투심에 저는 어깨가 올라갔습니다. 뭐, 여전히 아이니까요.
정말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는 당신도 신이 났는지 과일을 내어 오시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게임 기술은, 아주 발전된 첨단 기술을 적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며칠 전, 초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미국 그래픽 관련 회사는,
게이머와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한국 1등, 2등 기업 만큼이나 게이머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게임 기술의 발전 시기를 저는 함께 했습니다.
당시의 게임 기술은 즐거움에 대한 연구로 가득했습니다.
화면이 2분할 시도가 가능했습니다. (이건 2인 동시 플레이를 의미합니다.)
세가의 MD 소닉 2탄 또는 닌텐도의 SFC 마리오카트 등은,
당시 전자 기술자들의 꿈의 결정체 같은, 환상의 게임들이었죠.
초등학생, 겨우 열 몇 살이었네요.
한편, 그 때의 한 친구와는 평생의 소꿉친구가 되었습니다.
같이 게임 하는 친구라니... 우리는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어느새 친구는 딸 바보가 되었습니다.
저는 글 바보가 되어갑니다. 글 쓰는 꿈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충분히 기쁩니다.
여기까지 초등학교 시절의 단편 이야기 입니다.
저는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학교라는 작은 사회로 나가야 합니다.
이 때부터는 학교라는 체제를 잘 견디지 못했습니다.
뭐 슬픔의 곡선이 있어야 인생이 맛있겠지요.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어 보겠습니다.
글의 커텐을 닫으려고 하는데,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짧은 일화 입니다.
저의 가장 큰 축복은 부모님이 제가 게임을 그렇게 하는데도 인내로 기다려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한 채,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축구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명한 기억이라, 여기까지도 디테일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얼굴을 볼에 갖다 대며,
"사랑한다, 아들아" 라고 말하는게 아닙니까. 너무 놀라운 경험입니다.
그 날의 깔끄러운 감촉까지 마음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삭제 되지 않는, 영구 세이브 (저장)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그 딱 한 번의 기억이 나에게는 구원 같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널리 알려 진대로, 인간은 치명적 슬픔을 트라우마 처럼 기억한다는 말이 있지만,
가끔, 이 은유를 다르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압도적 기쁨 또한 무엇보다 소중히 기억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의 바람 이랄까, 꿈 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기쁜 하루를 만들어 갈 수 있느냐, 이 질문을 오래도록 붙잡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기뻤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에 보람이 느껴지면 좋겠다.
이 단순함이 저의 꿈 입니다.
무척 간단해 보여도, 실제로는 노력이 필요한 높은 목표라서 쉽지 만은 않습니다.
어머니는 50대 시절부터 건강을 많이 잃었습니다.
저는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까지, 어머니를 챙겨보려고 노력했고,
어머니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보내었지만, 지금은 아버지와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고민합니다.
왜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사니? 고생만 하고 후회한다? 날카롭고 현실적인 조언도 들립니다.
한국어에는 자녀를 위한 내리 사랑이라는 말은 있어도, 그 반대말은 좀처럼 현실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다고 해도,
저는 좋아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의 시간들.
말하자면, 가족과의 시간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던 시간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인생에 대한 거창한 논의들을 전부 덮어버린 채,
인생이 겨우 그 몇 사람으로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저는 왜, 좀처럼 몰랐을까요.
초등학생이라는 예쁜 옷이 끝나가던 그 시절.
저는 꽤 괜찮게, 어쩌면 참 반짝반짝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웃었고, 놀았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글을 맺을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즐거움 뿐인 생활에 변화는 찾아왔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머리가 커지고, 거친 일들을 겪으며,
저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 2장 이야기는, 기회가 오면 조심스럽게 용기를 담아 꺼내보겠습니다.
제법 긴 글이었지만, 특별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구글 제미나이는 단지 한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도 읽힐 수 있다고 미래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정직을 기반으로 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에피소드로 마치겠습니다.
저의 청춘 20대 시절, 돈벌이에 너무 지쳐서,
히키코모리 비슷하게 밤늦도록 레이싱 휠을 돌려가며,
게임 속 뉘르부르크링을 몇 번이나 질주하며 자신의 세계로 또 다시 몰입해 갈 때,
아버지는 끝까지 인내하셨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사랑을 먹으며 사람이 자란다고 말했으나,
실은 반대편의 풍경은 다른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때로는 바다처럼 넓어서 끝까지 보듬어 주셨습니다.
혹시 게임을 좋아하고, 밤늦도록 즐기고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의 기다림과 사랑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아름다운 시절이 행복으로 채워져 가기를 저는 기도합니다.
- 2026. 06. 07. 한국 시간으로 늦은 저녁. 글쓰는 기쁨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 시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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