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제 인생의 등불로 삼아도 좋을 시편 1편의 2절 시구 입니다.
주일 새벽, 호기심이 꽉 차 버린 저는 히브리어가 담은 뜻까지 생각해봤습니다.
즐거워하는 상태, 열망하는 상태가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요? 주님의 세계를요.
주님이 살아계심이 그저 기쁜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닐까요.
묵상하다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계속 행동한다는 뜻 입니다. 계속 곱씹는다는 의미 입니다.
끈질기게 아침에도 한 번, 저녁에도 한 번, 여러 번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왜? 주님은 인간이 뭐라고 이렇게 돌보시고 사랑하시는가?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영원의 주께서, 필멸의 인간을, 예뻐하시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므로,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끝으로 낮과 밤. 즉 주야로 이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현대 과학이 발견해낸 정밀 프로세스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기가 짝이 없습니다.
우리 뇌는 밤에 자는 동안에, 꺼진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밤을 걱정으로 채운다면, 우리는 깨어난 하루에도 벌써 지칠 테고,
반면 밤을 평안으로 채운다면, 우리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서 주님의 은혜를 느낄지도 모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Delight (기쁨, 희열) 으로 쓰여 있습니다. 완전히 빠져있는 상태죠.
주님의 말씀이 난 좋아! 를 조금 더 나아간 지점이 느껴집니다.
주님의 말씀은 최고의 기쁨과 같아!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어울립니다.
묵상 - 되새김질하다의 라틴어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메디타리 가 나온다고 합니다.
어원 뿌리에는 약의 성분이 온몸에 퍼지도록 녹여내다 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21세기 첨단 용어로는 주님의 말씀이 온몸 세포에 닿는다? 묵상의 효과는 실로 놀랍습니다.
실제로 신경 가소성이 밝혀지면서, 계속 노력하는 쪽으로 우리 뇌는 길을 만들어 나가거든요.
성경 말씀은 너는 할 수 없어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두려워 말라 라고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일본어 성경에서는 요로코비 - 기쁨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인생의 보물이구나 여기는 마음 입니다.
게임을 참 좋아하는 저 입니다.
최고의 보물을 얻으면, 그 검과 갑옷, 방패로 겁날 게 어디 있으며, 더 바랄 게 어디 있습니까.
따라서 주님의 말씀은 근원적인 기쁨 으로 표현 됩니다.
제가 피아노로 배우고 있는 찬송가와 연결 지어도 좋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니.
내가 매일 기쁘게~ 네.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슬퍼도 위로해 주시고, 절망해도 안고 인도해 주신다고 합니다.
눈물 많은 세상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까닭은 주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묵상하다의 일본어 표현은 쿠치츠사무 입니다. 글을 그냥 입으로 읽는 게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하는 상태 라고 합니다. 얼마나 말씀이 좋고 아름답게 느껴지면,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흘러 나오는 모습이 묵상 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수록 노래 소리가 되어 나옵니다.
찬송이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단 한 줄만 불러도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들이 분석으로 읽힐까봐 몹시 떨립니다. 그렇지 않기를 다만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진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 하렴. 그러면 평생토록 행복하단다. 그렇게 단순합니다.
탐내거나 비교하지도 말거라. 나의 달란트가 너무 작아서 하나 라면, 뭐 어떠냐 할 수 있는 일 하자.
복잡한 책들은 우리의 뇌를 발달 시킬 수 있겠죠.
때로는 우와! 내가 봐도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 지혜로움 조차,
사실은 하나님의 어리석음 보다 까마득하게 못하다는 것.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백 년을 살다 가신 할머니께서는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저에게 전했습니다.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된다. 나머지는 전부 필요하지 않단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말씀이라 저는 어린 시절에는 이 사실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실제로 밥이 나오는가? 매주 시간만 뺏기는 거 아닌가?
반대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입니다.
여러 병을 얻고, 칼을 대고, 수술까지 끝나니 사람은 변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교회에 나갈 수 있는 건, 얼마나 사람에게 커다란 복일까.
천국 잔치에 나 같은 죄인이 참석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큰 사랑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손톱을 단정히 다듬습니다. 주일에 작은 개척 교회에서 또 피아노 소리를 연주합니다.
힘을 뺍니다.
삶을 돌아볼수록,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의 기도 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 널 위해서 기도한다 는 소리가 들립니다.
좋은 장로 교회 목사님을 만난 것, 가족이 아픈 나를 오히려 더 사랑해준 것, 오랜 친구가 있는 것.
하는 일 마다, 마치 커다란 축복을 만난 듯. 계속해서 길이 열리는 것. 이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다시 성경말씀으로 돌아와 마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즐거워 합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신 구원으로 감사합니다.
천국문 앞에 이르렀을 때, 주님은 안아주실 것입니다. 고생했구나.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책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들, 실수들, 어리석음들, 그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갑니다.
- 2026. 06. 14. 시북. (오전 7시. 밤새 잠을 뒤척이며, 그냥 일어나 써봤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