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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로봇대전 알파 일기 3장 - 겟타팀 과 외계인 편

겟타팀이 나왔습니다. 제게는 아주 친숙한 슈퍼로봇 입니다. 물론 겟타빔 이라는 기술이 손가락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건 놀랍습니다! (위트 입니다.) 겟타팀은 3인분의 정신기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든든한 느낌이 있습니다. 자세한 분석글이 아니라, 가벼운 이야기 글이므로, 겟타1 의 느낌만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알파의 이야기는 박사님들의 외계인의 실존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SF 소설을 너무 많이 봤다며 의문은 제기 되지만, 아! 한 번 따져볼만 합니다. 재미삼아 슈퍼 컴퓨터에게 현대 기술로 관측되는 외계인 가능성을 확률로 물어봅니다. 이런 제미나이는 SF 소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걸까요? 수학적. 물리적 확률로 99.99% 외계인 (지적 생명체) 가 있을 꺼라고 관측합니다. 첫째, 지구에만 생명이 있을 것이라는 건 수학적 오만 이라는 관점입니다. 우주가 지나치게 넓어서죠. 둘째, 시간대가 안 맞아서 우리와 조우 (만남) 이 없을 꺼라고 보고 있습니다. 문명도 때가 있나보죠. 셋째, 광속이라는 절대적 장벽이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너무 멉니다. 있어도 만날 수 없죠. 그래서 기꺼이 슈퍼 컴퓨터 녀석은, 제 결론에 동의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외계인을 살아 생전 만날 가능성은 사실 1% 이하다. (없다!) 컨디션도 아주 쾌청하고, 상상의 나래를 즐기는 저는, 이번에는 파충인류 (고도 지능의 생명체) 에 대하여 그 가능성을 논의했습니다. 매우 서늘하게도 이번에는 무려 15 ~ 20%의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이른바 윤리가 없는 미친 과학자의 가능성은 게임의 단골 소재니까요. 우리에게는 너무 흔한 "좀비"가 사실상 재현될 가능성은, 과학의 발달이라는 역설이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가혹합니다. 지구를 떠나서 우리가 살게 될 가능성 입니다. 이것은 총.균.쇠.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님도 경고한 지구과포화 상태를 암시합니다. 우리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인 2100년까지를 봤을 때에는, 물론 이것도 높은데 10~1...

발해의 문화와 제도, 계층 고착화에 대하여 (On the Culture, Institutions, and Class Stratification of Balhae)

큰별쌤 2013년 강의를 메모로 남긴 내용입니다.

2026년 글로벌 확장판 입니다. 내용 어서 시작합니다. 


1. 고구려 계승의 문화적 증거 (Cultural Evidence of Succession)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라는 점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문화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으면 구별하기가 살짝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밥을 먹는 장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사람이라면 수저와 젓가락을 나란히 놓고서 밥을 먹을테고, 일본 사람이라면 젓가락만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열을 논할 필요는 굳이 없고, 각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다는 의미 입니다. 노래만 해도, 중국풍, 일본풍, 우리나라 전통민요는 그 곡조와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Examining Balhae’s succession of Goguryeo from a cultural perspective is perhaps the quickest way to understand it. This is because every nation possesses its own unique cultural identity. If a Korean and a Japanese person are dressed in similar clothes, it might be slightly difficult to tell them apart at first glance. However, wouldn't it become instantly clear if you watched them eat at a restaurant? A Korean would likely dine with both a spoon and chopsticks placed neatly side by side, whereas a Japanese person would most likely use only chopsticks. There is absolutely no need to argue over which is superior; it simply means that each nation has its own distinct culture. Even in music, the tunes and vibes of Chinese style, Japanese style, and Korean traditional folk songs are profoundly different from one another.

그렇게 놓고 본다면, 발해의 특징은 온돌문화 를 들 수 있습니다. 당나라의 역사서 구당서와 신당서에도 발해의 풍속이 고구려와 같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난방 양식인 온돌을 깔고, 뜨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발해가 한민족 역사라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중국에서는 의자 등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있습니다. 확실히 다르지요.

When viewed through this lens, the most defining characteristic of Balhae is its Ondol (underfloor heating) culture. Even the Tang Dynasty historical records, the Old Book of Tang and the New Book of Tang, describe the customs of Balhae as being identical to those of Goguryeo. People laying down Ondol—Goguryeo's distinct heating style—and sitting together on the warm part of the floor to chat serves as undeniable evidence that Balhae is an integral part of Korean history. In contrast, China developed a culture of sitting on chairs to drink tea and converse. The difference is unmistakable.

2. 일상에 녹아있는 좌식 문화 (The Heritage of Floor-Sitting Culture)

여담 몇 가지 더 언급하면, 마치 고구려인의 피가 흐르는 듯한, 저의 오랜 절친 고씨는 책상식 컴퓨터 받침대 대신에, 좌식용 컴퓨터 받침대를 사용하면서, 방바닥에 앉아서 컴퓨터를 활용합니다. 저 역시도 과거 비디오게임을 한참 즐겨할 때는 방바닥에 앉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외국 영화를 보면 다른 동네 사람들은 게임을 해도 꼭 의자에 앉아서 하거나, 침대 측면에 걸터앉아서 할 때가 있더라고요. "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봐라" 식의 좌식 문화는 오래도록 이어진 한국의 전통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To share a few more quick asides: my long-time close friend, whose last name is Go—making it feel as though the blood of ancient Goguryeo warriors flows through his veins—uses a low floor-desk instead of a standard computer desk, sitting flat on the floor to use his computer. I, too, preferred sitting on the floor back when I used to play video games all the time. Yet, when watching foreign movies, people from other parts of the world always seem to play games sitting on chairs or perched on the edge of a bed. Perhaps this floor-sitting culture, summarized by the phrase "Don't just stand there, pull up a spot on the floor," is a deeply rooted Korean tradition that has endured for ages. :)

그 외에도 남자의 패기가 느껴지는 돌사자상, 석등 등도 고구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합니다. 사회 측면에서는 지배층이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이 속말말갈인 이라는 것은 지난 번에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정치적으로는 문왕이 외교문서에서 "고구려왕이라고 자칭"했다는 것을 통해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고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만 이해하고 있으면 시험에서 간혹 물먹을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Beyond that, artifacts like the stone lions, which exude a masculine vigor, and the stone lamps are also elements where the vibrant spirit of Goguryeo culture can be felt. On the social front, as I mentioned previously, the ruling class consisted of Goguryeo descendants, while the ruled class was primarily made up of the Sumo Mohe people. Lastly, politically, we can discern that Balhae was a successor state to Goguryeo through the fact that King Mun explicitly referred to himself as the "King of Goguryeo" in official diplomatic documents. However, if you only memorize this side of the story, you might occasionally end up failing an exam question (...) because Balhae was also heavily influenced by the Tang Dynasty.

3. 당나라의 영향과 발해의 독자성 (Tang Influence and Balhae's Autonomy)

발해의 중앙 제도는 당나라와 비슷한 3성 6부 체제 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3성 밑에 독자적인 좌사정, 우사정, 이렇게 2정이 있어서 독자적인 모습도 갖추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앙 제도가 당나라와 비슷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정리하면 "중앙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자성은 있었다" 정도가 거의 선택지의 단골 코스라 하겠습니다 (...) 그 외에도 발해에는 10위 중앙군이 있었고요. 발해는 수도격인 상경에 주작대로가 있었다는 것도 당나라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It is essential to keep in mind that Balhae's central government utilized a Three Departments and Six Ministries system (3-Seong 6-Bu), which was highly similar to that of the Tang Dynasty. Granted, they maintained their own unique flair by splitting the ministries under two separate administrations, the Left and Right Secretariats (Jwasajeong and Usajeong), but the foundational structure mirrored the Tang system. To summarize this point: "The central administration was influenced by the Tang Dynasty but maintained its own independence"—this is practically a staple multiple-choice option on exams. (...) Additionally, Balhae had a central army composed of Ten Garrisons (10-Wi), and the presence of Jujak Avenue (the main thoroughfare) in the capital city of Sanggyeong can also be attributed to Tang influence.

주작대로는 중국 장안성의 구조를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중앙에 궁이 있고, 그 아래 거대하고 큰 길이 쭈~욱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구조 본 적 있지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상상이라도 해봅시다. 쿨럭 -_-;;; 여하튼 이런 중국식 구조의 건물이, 발해 상경에는 있었습니다.

Jujak Avenue was modeled after the urban layout of Chang'an, the Tang capital. You can picture a scene from a Chinese historical film: the imperial palace stands majestically at the absolute center, and a massive, sweeping avenue stretches grandly all the way down from it. You've probably seen that kind of structure before, right? If it doesn't ring a bell, let's at least try to imagine it. Cough -_-;;; At any rate, this style of Chinese urban design was fully present in Balhae's capital, Sanggyeong.

4. 고대 기관이 현대에 던지는 메시지 (Lessons from Ancient Institutions)

발해에는 주요기관이 가끔 문제로 나오는데, 서적 관리를 맡고 있는 문적원이 있었습니다. 교육 기관인 주자감이 있었고요. 감찰 기관인 중정대가 있었습니다. 가만보면 이 3가지가 국가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역으로 알 수 있습니다. 교육, 지방 감시, 기록과 문서 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주역들을 잘 키워나가야 하며, 감시를 통해서 권력의 부정부패를 잘 막아야 하며 (물론 고대에는 반역을 막는 측면이 더 컸겠습니다), 각종 기록을 통해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결국 국가는 인간이 만든 조직이기 때문에, 인간사에 중요한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게 재밌지요.

The key institutions of Balhae frequently pop up on exams: there was the Munjeogwon, responsible for managing books and records; the Jujagam, the state educational institution; and the Jungjeongdae, the inspectorate body. Looking closely, this conversely reveals what matters most to a state: education, oversight, and records/documentation. The same holds true today. We must nurture the next generation of leaders through education, prevent corruption through constant oversight (though in ancient times, this leaned more toward preventing treason), and leave a legacy through meticulous documentation. Ultimately, because a state is an organization built by human beings, it is fascinating to see that the things crucial to human affairs remain entirely unchanged, whether in the ancient past or the modern era.

5. 소수 지배 체제의 취약성과 이데올로기 (The Vulnerability of Minority Rule)

뭐 이정도만 짚어둔다면, 이제 발해 이야기는 끝내도 될 것 같습니다. -끝, 나머지는 여담- 오늘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때, 왜 약할 수 밖에 없는가? 라는 영감을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다수는 소수를 위해서 몸바쳐 싸울 수 있는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싸워야 하는데?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소수는 위기 때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With these points covered, we can wrap up the historical breakdown of Balhae. -End of History Notes, The Rest is Commentary- Today, I want to dwell a bit deeper on a specific insight: Why is a state inherently fragile when a tiny minority rules over a vast majority? When a crisis strikes, the majority lacks any compelling justification to lay down their lives for the sake of the ruling minority. If the state cannot answer the fundamental question—"Why should I fight for you?"—the ruling class will inevitably collapse under the weight of the crisis.

그렇기에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가미카제 같은 국가를 위한 "자살행위"를 예찬하는 것이 대표적이라 하겠지요. 내 목숨 던져가면서, 국가를 위해 싸우면, 국가는 당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것이지요. 이런 이데올로기는 대단히 강력해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실제로 "조국을 위해" 자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후대에도 순수한 정신으로서 칭찬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희생되는 것은 누구입니까. 전투 지휘관이 자살특공을 할 리는 없을테니까요. 조직에서 언제나 먼저 고통을 짊어지는 것은 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This is precisely why nations like imperial Japan manufactured powerful ideologies. A prime example is the glorification of Kamikaze—glorifying "suicide" for the sake of the state. The state seduces the individual with a promise: throw away your life for us, and we will grant you eternal honor or reward. Such ideologies are terrifyingly potent; despite facing immense criticism, records show that many actually volunteered "for the country." Even in subsequent generations, some still praise it as a manifestation of pure devotion. But in the end, who is the one being sacrificed? It’s never the high-ranking battlefield commanders going on suicide missions. Within any organization, the ones who always bear the brunt of the suffering are those at the absolute bottom. It is heartbreakingly tragic.

오늘날은 다수를 움직이기 위해서, 유혹적인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이것만 해준다면, 네 앞길을 보장해주겠다는 유혹 앞에서, 무릎 꿇기 시작하면 결국 내가 아닌 "소수의 지배층"을 위해서 봉사하기가 쉽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면서 강하게 주장하던 사람들 조차도, 자꾸만 유혹을 받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동해서, 다수의 공공성 대신에 소수의 사익을 위해서 몸바쳐 일하게 되기도 합니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혹이 필요하다는 점을, 오늘날 지배층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내 편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만, 위기에도 침몰하지 않을테니까요. "자, 출동, 내 대신에 훌륭하게 실드 쳐줘!"

In the modern era, seductive carrots are dangled to manipulate the masses. Faced with the enticing promise that compliance will guarantee your future, once you begin to kneel, it becomes incredibly easy to find yourself serving the interests of a "select elite" rather than your own. Even those who initially resisted fiercely, shouting that it makes no sense, can gradually find their hearts swayed by persistent temptations. Eventually, they end up sacrificing themselves for the private gains of the few rather than the public good of the many. Perhaps today’s ruling class knows better than anyone else that various forms of seduction are vital for the minority to control the majority. Only by surrounding themselves with such loyal shields can they ensure they won't sink when a crisis hits. "Alright, deploy! Go out there and shield me beautifully!"

6. 생명의 가치와 계층 고착화의 위험 (The Worth of Life and Stratification)

물론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 역시도, 조직이나 집단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제 편향적인 사고일 수 있습니다. 저는 강요하는 행위를 거의 혐오하며, 사람의 한 목숨은 세상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 사람의 인생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적어도 그 한 사람은 살아가는 세계 전체가 바뀐 것과 같다고도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이 저의 세계관에서 뿌리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에, 저는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는 행동을 도무지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특정 집단이,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쩌라고, 배째" 하고 있는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거의 없습니다.

Of course, this entire line of thought might simply be my own biased perspective—one that fiercely values individual "freedom" over organizations or collectives. I harbor a deep-seated aversion to coercion, believing that a single human life is more precious than anything else in the universe. If you can change just one person's life, then for that single individual, the entire world they live in has shifted. Because the absolute worth of every single human being is so deeply rooted in my worldview, I can never look kindly upon any action that treats life lightly. When a certain collective shrugs off a tragic death with an indifferent "So what? Do your worst," there are few things more profoundly sorrowful.

자, 이제 여기까지 길게 생각을 이어온다면, 발해는 결국 말갈인들에게도 기회를 더 줬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피곤한 선택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우리 모두 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 명분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명분과 함께 모두에게 적절한 혜택과 기회가 주어졌다면, 발해 역시도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조금 걱정인 것은, 정의와 기회균등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발해처럼 이원화 되는 구조로 고착화 되는건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빈자의 완벽한 분리, 소수는 "캐슬"에 살고, 다수는 "가계대출"을 의지하면서 산다면, 그런 국가로 계속 가면, 종국에는 외부적 위기 앞에서 순식간에 몰락해 갈 수 있다고, 발해 역사는 냉정하게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When we extend this train of thought to its logical conclusion, it seems that Balhae ultimately should have granted more genuine opportunities to the Mohe people. It might have been a tiring, politically exhausting path, but through concession and compromise, they should have forged a shared justification for everyone to defend the nation together. If a compelling cause had been paired with fair benefits and opportunities for all, Balhae would never have collapsed so easily. My concern for our country today stems from a growing sense that justice and equal opportunity are slowly slipping away. I worry that we are solidifying into a rigid, dual-layered structure much like Balhae did. A complete segregation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where the few reside in exclusive "castles" while the majority scrambles to survive on "household loans"—if a nation persists down this path, the history of Balhae serves as a chilling warning that it could vanish in the blink of an eye when confronted by an external crisis.

발해는 전성기에서 급추락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1등, 2등을 하는 것에만 눈을 집중하기 보다는, 그와 동시에, 사회 안전망 구축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만, 대한민국은 더 아름답고 존경받는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나라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Balhae did not take long to fall from the absolute peak of its golden age to a sudden, catastrophic collapse. Rather than fixing our gaze solely on ranking first or second in the world, we must simultaneously concentrate on building robust social safety nets and fostering a truly just society. Only when we solve this incredibly difficult puzzle will the Republic of Korea become a more beautiful, deeply respected, and truly advanced nation. That is the kind of country I hope we become.


2026년의 영감

운 좋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글입니다. 무엇을 덧붙여야 할까 고민합니다.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가 슈퍼 컴퓨터와 논의합니다.


매우 간략한 결론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정한 사회! 내가 오늘 흘린 정직한 땀방울이 사익으로 도둑맞지 않는 세상"

이것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예컨대, 내가 땀흘려 300만원을 벌었는데, 쓸 수 있는 돈이 정작 100만원이라면 씁쓸할 것입니다.

아마 100만원 정도는 중간에서 누가 가져갔나 봅니다. 사용수수료 라든지, 시설이용료 라든지 등등...


시스템을 잘 이해할수록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유혹적인 생각은 넘쳐 납니다.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재미가 없으므로, 실천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하기야, 지금은 내가 생존하기 조차 힘든데, 마음에 여유를 두는 것은 사치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 이렇게 판단했으면 돈을 좀 더 벌었을텐데"

"아! 어디 학원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최고의 학교를 갈텐데"


더 이상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오래 전 읽었던 최연호 교수님 (의사 선생님 - 저서는 통찰지능) 의 발언이 흘러갑니다.

[ 행복의 비밀은 저는 아주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면 나도 행복해 지더라고요. ]

아니나 다를까, 반박의 이야기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필요 뭐 있을까? 라는 합리적 의심 이겠죠.


책에서는 아주 힘든 병을 앓았던 한 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배려심과 헌신이 끝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의료진을 향해서도 늘 존중하는 태도를 노력합니다.

우리는 AI가 아닙니다. 예쁜 태도란, 마음에 남습니다.


큰소리로 세상을 움직이거나, 바꾸는 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타인을 생각하는 태도.

조금 세게 말한다면, 내가 약간 손해 보고, 남이 좀 더 이득 보는 태도 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다 보면 기적 같은 인연이 발생해 서로가 힘이 되는 관계를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책에서도 복권 1등 (대략 10억원의 가치) 을 압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서, 함께 신나게 웃으며, 학창 시절을 보내렴.

나눠 먹으렴.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렴.


저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작은 풍경이라고 - 여전히 믿습니다.

- 2026. 06. 시북 (큰별쌤의 오랜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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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작가 시북

작가 시북 경쾌하게 기계식 키보드로 두드려 보고 싶었습니다. 20대 시절의 꿈이었습니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실은 블로그 생활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기 구글 블로그 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547만 카운터를 자랑했습니다. 제법 똑똑해진 제미나이 프로 에게 물어보니 상위 1% 블로그 정도는 된다고 하네요. 확실히 대형 포털 메인 화면에 노출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꽤 뿌듯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버리기로 했습니다. 다시 제로부터 시작하기로 결단해 버렸습니다. 20대 시절 사 놓았던 추억의 도메인을 이 곳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하자 조금은 설렙니다. 글은 남는다 이 점이 매력이었습니다. 너는 글을 잘 쓰는구나 한결 같은 칭찬이 계속되자 이것을 작은 달란트(재능)로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내가 선물 받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1,000만 카운터를 찍어보고 싶습니다! 라고 답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달라졌습니다. 병이 깊이 들고, 목표들이 차례 차례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힘 - 바벨탑 쌓기를 멈추고, 다른 길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우 감사합니다. 미래의 누군가 에게 제 글이 닿기를 바랍니다. 10년 뒤, 누군가 우연히 글을 읽고, 잠시 힘을 낸다면 저는 정말 기쁠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미소가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담아 노력해서 글이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날이 갈수록,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 날마다 배웁니다. 또렷함은 희미해져서, 그 좋아하던 책을 겨우 한 장 넘기기 어려워지고, 피아노에 도전한 멋진 모습은 주일 오전 마다 서투르고 어설픈 반주가 되어 나를 무너뜨립니다. 이번 구글 에서 맞이하는 블로거 도전은 충분히 제 인생을 걸만한 것입니다. 어느덧, 책을 낸다고 작가가 되는 세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한 태도로 글을 쓸 때, 얼마든지 미래의 누군가 에게 마음이 전해진다는 걸 압니다. 자신감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제 글 실력은 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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