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면수비수의 전설들이라 할 수 있는 두 명의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브라질의 카푸(RSB)와 프랑스의 리자라쥐(LSB)가 98년 월드컵에서 맞붙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출처 : namiradogol.wordpress.com) 참 유명한 선수였죠. 브라질의 카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Cafu
 생년월일 : 1970년 6월 7일
 신장/체중 : 176cm / 75kg
 포지션 : DF (RSB), MF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142시합 5득점 (국가대표 출장 1위)

 브라질 전설의 라이트백, 카푸 이야기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트로피를 거머쥐고, 잘 나가던 시절 공격진도 화려했지만, 수비진 역시 걸출했습니다. 특히 양 측면의 수비수들은 과감한 공격적인 오버래핑으로 눈길을 받았습니다. 왼쪽수비수는 로베르토 카를로스 였고, 오른쪽수비수는 바로 카푸였지요. 또한 카푸는 대표팀의 주장이자, 정신적지주 이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로도 무려 142시합이나 출장! R 카를로스가 역대 2위고, 카푸가 역대 1위의 출장 기록입니다. 앞으로도 빠른 시일 안으로는 절대 깨지기 힘든 기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 카푸, 과연 당신은 어떤 선수였는가!

 빈민가에서 자란 카푸는, 소년 시절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긴 많은 소년들이 멋진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축구 선수, 스타 선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월드스타로도 불리는 가수 비를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비는 오디션에서 18번이나 떨어졌지만, 포기할 줄 몰랐고, 마침내 오디션을 통과하고, 수 많은 노력을 통해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 아니겠습니까? 그 집념은 정말 높이 삽니다. 카푸도 축구계에서는 월드스타 중 한 명이었으나, 그 출발은 12번의 입단테스트 실격이었습니다.

 여러번의 탈락을 이겨내고, 1988년 현지의 강팀 상파울로 팀에 드디어 입단하게 되는 카푸. 이야기는 이제 시작됩니다. 두둥. 이 당시 감독이 바로 명장 "텔레 산타나" 감독이었습니다. (K-리그 포항의 새감독인 레모스 감독이 얼마전 인터뷰에서 그랬지요. 텔레 산타나 감독의 축구가 내가 바라던 스타일이었다.) 텔레 산타나 감독은 아름다운 축구를 추구했고, 지저분하게 이길 바에야 차라리 지는 것을 선택했던 그런 감독이었지요. 여하튼 텔레 산타나 감독은 카푸를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기용합니다. 명장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카푸의 재능은 나날이 발전해 나갔고, 20살 무렵부터 주전으로 활약을 펼쳐나가기 시작합니다.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요.

 상파울로팀에서는 우승에 공헌하는 등 훌륭한 젊은 시절을 보냈고, 94년 월드컵에서는 국가대표로 결승전 무대를 밟게 되었으며 우승까지 경험했습니다. 당시 브라질팀 주전이었던 - 오른쪽 측면 수비수 조르지뉴의 부상 - 으로 인해서 공백이 생겼고, 젊은 카푸가 그 자리를 잘 대신해 나갔던 것이지요. 조르지뉴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는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조르지뉴의 자리는 카푸가 물려받게 된 셈이지요. 카푸는 97년에는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했고, 이후 2006년까지 대표팀에서 부동의 지위를 확립합니다.

 90년대 중반에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사라고사 팀에서도 잠깐 활약했지만, 팀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1년만에 귀국한 적이 있었어요. 돌아와서는 브라질 팔메이라스팀에서 우승에 공헌하면서 다시 이름값을 잘 해냅니다. 여하튼 1997년까지 카푸의 이름은 유명세가 높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1997년 부터는 카푸의 포스가 펼쳐집니다. 이탈리아의 세리에A 강호 AS로마로 이적, 코파 아메리카 우승 경험 등, 실력을 널리 인정받기 시작하지요.

 두 번째 유럽무대 도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AS로마(2001년)의 18년만의 우승에 공헌했고, 세리에 무대에서 손꼽히는 유능한 브라질 선수로 위용을 높여갔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오른쪽 수비수로 평가받았으며, 카푸는 오른쪽 측면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라는 평을 듣게 됩니다. 전성기 시절의 카푸를 살펴봐야겠지요.

 카푸는 경이적인 체력으로도 이름이 높습니다. 경기장을 쉬지 않고 누비는 모습이 큰 매력이었어요. 수비능력도 물론 좋았지만, 빠른 발을 살려서 날카롭게 공격에 참가하는 게 카푸의 백미였지요. 정확한 크로스도 일품이고, 때때로 과감하게 골까지 노리기도 했습니다. 이봐... 카푸 아저씨, 당신 수비수라고 (...) 이렇듯 카푸는 공격적 사이드백의 대표적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98년 월드컵에도 출장했으나, 팀은 아쉽게 프랑스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지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카푸가 바로 브라질팀의 주장이었습니다. 전 시합에 출장한 카푸는 브라질 팀의 승리에 공헌했으며, 브라질은 월드컵 우승트로피를 따냅니다. 아아, 화려하구나 카푸의 커리어! 남들 한 번 하기도 힘든 월드컵 우승 경험이 2번이고, 결승전은 무려 3번이나 출장했으니... 카푸는 2006년 월드컵에도 4경기를 출장하게 되는데, 월드컵에서 통산 20경기나 출장했습니다. (한편 2006년에는 30대 중반이 넘어선 카푸는 R.카를로스와 함께 부진한 모습으로 브라질 탈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2006년에 둘 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세월이란;)

 2003년에는 AC밀란으로 팀을 옮겨서 활약을 했습니다. 나이도 적지 않았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지요. 뭐, AC밀란은 나이든 선수가 많은 편이었기에 노익장 밀란 소리도 종종 듣습니다 (웃음) 여하튼, 이적 첫 해부터 리그우승에 큰 공헌을 해내는 막강한 포스를 보여줍니다. AC밀란으로서도 5년만의 값진 리그 우승이었지요. 최근에는 인터밀란이 다 해먹고 있습니다만... (...) 카푸는 또한 FIFA100에도 선정되면서 레전드의 반열에 이름을 확고히 올립니다. 그리고, 2006-07시즌 대망의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커리어에 넣어버립니다. 어떻게 본다면 카푸는 복이 많았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만큼의 실력과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카푸에게는 화려한 우승 경력들이 따라왔던 것이지요. 브라질 국가대표 최다경기 출장자였던 카푸. 그는 이렇게 2008년을 끝으로 길고 화려했던 축구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수비수임에도, 타이밍을 노려서 오버래핑을 펼치고, 쉼없이 경기장을 질주하며 패스 공간을 만들어 내던 카푸. 전성기시절, 빠른 스피드, 타이밍 감각, 놀라운 체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오른쪽 사이드의 지배자"로 불렸던 위대한 전설 카푸. 이제는 레전드로 불리며, 제 2의 인생을 살아가야 겠지요. 세월 참 빠릅니다. 허허. 마치며 유튜브에서 발췌한 카푸의 살인미소 스페셜을 준비했습니다 (웃음) 많은 댓글이 있지만, 전설의 오른쪽 수비수를 논할 때, 항상 그의 이름이 꼽힐 것이다. 라는 평이 인상적이네요. 글을 마칩니다. 애정어린 댓글로 응원해주시고, 애독자님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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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리즈여! 오늘날 3부리그로 추락한 리즈유나이티드 입니다만, 전성기 시절 리즈는 굉장한 포스를 자랑하던 명문팀이었습니다. 1970년대 챔피언스컵(현재 챔피언스리그)에서 결승전 무대까지 올라갔던 리즈. 그 화려하고 강렬한 포스 때문에, "리즈 시절" 이라는 말도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화려했던 시절이라는 말을 의미하지요. 3부리그에서 버티고 있는 리즈가, 챔피언스무대 결승까지 올라갔던 팀이라는 사실은 이제 아련한 옛추억이 되고 말았네요. 오늘은 그 시절 스타선수였던 빌리 브램너에 대하여 잠깐 알아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Billy Bremner
 생년월일 : 1942년 12월 9일 (작고 1997년 12월 7일)
 신장/체중 : 166cm / 63kg
 포지션 : MF
 국적 :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 54시합 3득점

 화려했던 "리즈시절"의 중원을 지배하던 사령관, 빌리 브렘너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키 166cm 입니까 (웃음) 하지만, 빌리 브렘너는 거인이었습니다. 리즈의 거인이지요. 사람을 외모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잠재력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뭐, 마라도나도 166cm 였고요. 아무튼, 작은 키 때문에 굴욕을 맛보았던 브렘너였는데요. 이야기 출발합니다.

 입단테스트를 아스널, 첼시 등에서 받았던 브렘너 였습니다만, 작은 키도 좀 걸리고, 결국 테스트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리즈에 입단할 수 있었는데, 1960년 1월, 만 17세의 영건 브램너는 이렇게 리즈에서 축구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도 그렇지만 영광의 "리즈시절"이 쉽게 찾아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브램너는 초창기시절 1부리그에서 겨우 11시합 뛰어봤습니다. 왜냐구요? 팀이 "강등" 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초반 눈물의 2부리그 생활이 시작됩니다.

 인생은 기회의 연속이라는 말도 많이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인 "하나의 길이 닫히더라도, 또 하나의 길은 열린다" 라는 것을 음미해 봐도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리즈팀의 강등은, 빌리 브렘너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10대였던 브렘너에게 더욱 많은 출장 기회가 찾아왔고, 2부리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쳐나가며 리즈에서 일약 중심선수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1961년에는 30대 젊은 감독 돈 레비 감독이 리즈에 취임하게 됩니다. 돈 레비 감독은 이 때부터 10년 넘게 리즈를 지휘하며 화려한 시대를 이끌었고, 훗날 명장으로 평가받게 되지요. (나중에 잉글랜드 대표팀까지 이끌게 됩니다)

 수년간의 2부리그 시절이 끝난 것은, 1964년이었습니다. 그리고 화려했던 "리즈 시절"이 시작됩니다.

 1968년 리그컵 우승, 1969년 감격의 리그 첫 우승, 1971년 FA컵 우승, 1974년 2번째 리그 우승을 기록합니다. 리즈는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잉글랜드의 손꼽히는 강팀이었습니다. 65,66,70,71,72년에는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리그 2위를 기록했습니다. 국제무대에서도 잘 찼습니다. UEFA컵의 전신인 "인터시티 페어즈컵" 에서도 2차례 우승을 기록하며 위상을 높입니다.

 물론 리즈에는 브렘너 외에도 훌륭한 선수가 많았습니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여하튼 브렘너는 당시 주장이었고, 강렬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기 때문에 특별히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 스타일도 조금 언급해야 겠습니다.

 우선 성격 자체가 피가 막 끓어오르던 선수였어요. 경고도 종종 받았고요. 투쟁심이 강했습니다. 장점으로는 엄청난 체력과 뛰어난 패스 감각이 손꼽힙니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는지, 그 뜨거운 투지 때문에, 그라운드의 호랑이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재밌는 에피소드로 1974년 당시 잘 나가던 리버풀의 에이스 케빈 키건과 맞짱을 떠서 둘 다 퇴장당한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불같은 성격하면 떠오르는 캡틴 "로이 킨"처럼 확실히 투지가 넘치던 빌리 브렘너 였어요.


 1974-75시즌의 챔피언스 무대도 리즈에게는 참으로 대단했던 시절이었습니다. 4강전에서 강호 FC바르셀로나를 잡아내면서 결승까지 올랐던 것입니다. 당시 바르샤에는 토탈사커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가 뛰고 있었습니다. 빌리 브렘너는 요한 크루이프의 활약을 집요하게 봉쇄하면서, 승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발군의 퍼포먼스였지요. 그렇게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독일팀이었어요. 결승전은 바이에른 뮌헨과 리즈 유나이티드의 진검 승부가 펼쳐집니다. 뮌헨은 또 어떠했습니까, 레전드 베켄바우어를 시작으로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등 화려한 독일 대표팀 멤버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리즈와 브렘너는 그러니까, 전성기 시절 - 1974년 월드컵 우승팀(독일/베켄바우어등)과 준우승팀(네덜란드/요한크루이프등)의 에이스들을 상대했던 것이지요. 이런 초특급 주장들이 이끄는 최강팀들과 맞붙어야 했음에도, 리즈는 충분히 강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4강에서는 "무실점으로 4강까지 올라왔던 거함 FC바르셀로나"를 기어이 침몰시켰어요.)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승전 경기 결과는 0-2. 리즈 유나이티드의 패배였지요. 74년 월드컵 우승팀의 정예 멤버가 포진한 바이에른 뮌헨은 정말 강팀이었습니다. 70년대 중반에 챔피언스무대에서 무려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유럽 지존의 명성을 날리던 팀이었으니까요. 아쉽긴 해도, 리즈는 충분히 잘 싸워주었고, 유럽 최고의 팀을 겨루는 무대에서 결승까지 올라섰던 이 화려했던 리즈의 지난 이야기들을 우리는 "리즈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자국의 리그에서 조차 밀리면서, 3부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 안습 그 자체입니다.

 아, 그리고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도 빌리 브렘너는 주장을 맡았으며, 또한 잘 해나갔습니다. 1974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부터 강호 유고, 브라질 등과 같은 조가 되었다는게 안타까웠지요. 브라질, 유고, 스코틀랜드는 나란히 1승 2무를 기록했는데,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는 득실차에서 1골 밀리면서 3위로 내려앉았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스코틀랜드 대표로서 54시합을 출장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며 마쳐야 겠습니다. 빌리 브렘너는 1959년부터 76년까지 리즈에서 587시합이나 출장했으며, 90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선수생활 말기에 다른 팀에서도 잠깐 뛰었지만, 리즈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나갔던 캡틴이었지요. 2006년 12월 9일,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며, 리즈의 홈경기장 앞에 빌리 브렘너의 동상까지 세워졌습니다. 3부리그에 있는 리즈팀 선수들은 그 동상을 봐서라도, 어서 다시 한 번 리즈 시절을 만들어야 할텐데... 리즈의 대선배 브렘너는 97년 12월에 심근경색에 의해서 향년 54세로 생을 마칩니다. 빌리 브렘너의 노래까지 있을 만큼, 위대한 선수였던 그가,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평소보다 좀 더 이야기가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인기도 많았기에, 유튜브에서 그를 기념하는 영상들도 존재합니다.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위대한 선수 였다고 추켜세우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브렘너는 정말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리즈에게는 영원한 레전드로 기억될 것입니다. 늘 애정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분들 덕분에, 계속 연재해 나가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언제나 전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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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마지막으로 클리어 했던 작품은 드래곤퀘스트9 였습니다. 리뷰가 늦어진 것은, 어떻게 쓸지 감이 오지 않아서 였는데, 계속 미루다가는 아예 기억마저 잃어버릴 것 같아서 (...) 클리어 후기를 진득하게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화려한 기록부터 좀 언급해야겠습니다. 패미통 크로스리뷰 40점 만점을 받은 대작, 게다가 과연 드퀘 답게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합니다. 300만을 넘어서면서도 그 기세가 수그러지지 않더니, 기어이 2009년에 410만개를 팔았습니다. 당당하게 2009년 전체 판매 1위 게임입니다. 유저들의 평가는 그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과연 명작이다, 또는 평이했다 부터, 기대 이하이다, 실망이 컸다 등등... 자 여하튼 그럼 이야기 속으로.

 게임명 : 드래곤퀘스트9
 기종 : NDS
 제작 : 스퀘어에닉스
 발매일 : 2009년 7월 11일
 판매량 : 약 410만장 (2009년 최다판매 타이틀)

 플레이기간 : 2009년 12월
 플레이타임 : 약 45시간 (엔딩)
 클리어레벨 : 38~40레벨 (마법전사, 배틀마스터, 팔라딘, 현자)
 개인적평가 : ★★★★★

 네트워크로 세계가 연결된 세상에 걸맞게, 드퀘 사상 처음으로 멀티 플레이가 도입된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사실 드퀘9 라는 정식 명칭을 달고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휴대용 게임기이며, 멀티 플레이를 도입하는 쪽으로 "드래곤퀘스트 외전"식으로 출시하는 것도 검토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정식 넘버링 타이틀로 제작 방향을 정했고, 그에 걸맞게 충분히 멋진 작품이 태어났습니다. 일본에서의 드퀘의 인기야 뭐 엄청나지요. 3일만에 300만개를 팔았고, 두 달이 조금 더 지나서 400만을 넘겼습니다. 현재에는 415만개를 돌파하면서, 역대 드퀘 1위 판매를 기록했고, 2010년 3월에는 베스트판의 발매까지 잡혀 있습니다. 덜덜덜.

 일단 베이스는 -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 드퀘3과 비슷한 시스템입니다. 동료를 직접 만들고, 직업을 정해줘서, 함께 모험을 떠나는 플랫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유저마다 서로 다양한 파티를 구성해서 플레이 하는 매력이 있지요. 저의 경우 일반 구성인 마법사, 승려, 뭐 이렇게 넣습니다 (...) 자유도가 상당해요.

 게다가 드퀘9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캐릭터에게 복장을 입히면, 바로 외관상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강철 검을 들었을 때와, 부채를 들었을 때, 드레스를 입었을 때와 갑옷을 입었을 때의 겉모습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장비를 입혀보는 즐거움이 정말 컸습니다. 직업에 따라서 무기와 장비가 다르기 때문에, 그 구성을 생각하는 것도 유저의 즐거움이겠고요. 전작 8탄과 같이 직업에 따른 스킬 시스템이 있어서, 캐릭터를 강화시켜나가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유쾌함입니다. 나의 새로운 스킬을 받아라!!! 슈퍼 파워 업! 이라든가~

 드퀘9만의 또 하나의 변화는, 적이 필드 상에 표시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리조리 피해다니면, 급할 때는 빠른 시간 안에 던전을 탐험하는 것도 가능해 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투 타이밍도 유저의 몫이라는 건가요. 하하.

 단점을 굳이 언급하자면, 본편이 좀 짧다는 정도? 입니다. 메인 스토리만 따라간다면 30시간 이내에 클리어도 가능할 만큼, 이야기가 조금 축소된 느낌이 있습니다. 주인공 단독 스토리니까 더욱 그러하겠지요. 게임 자체의 몰입감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조금 하다보면 어느덧 당신은 마지막 던전 (...) 이렇게 되버립니다. 이것은 뭐 칭찬이지만,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보완도 할겸, 퀘스트라고 해서, 짧은 모험꺼리가 100개 이상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서브이기 때문에, 크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잔 재미에 해당하는 정도.

 아, 그리고 Wi-Fi통신을 통해서 누구나 접속만하면 추가 퀘스트를 받을 수 있어요. 단 추가 퀘스트를 하려면 엔딩을 보고 나서의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일종의 보너스겸 2부 순서라고 할까요. 국내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여하튼 통신을 통해서 멀티플레이도 가능하고 말이지요.

 조금 짧긴 해도, 게임 자체는 굉장히 완성도가 좋아서, 과연 드퀘 맞습니다! 몰입감도 뛰어난데, 새로운 장비를 얻었을 때, 입으면 어떤 포스가 날까 기대도 되어서, 새로운 마을, 새로운 던전을 향해 간다는게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난이도도 뭐, 최근 RPG 게임들 답게 - 유저친화적으로 - 어렵지 않은 편이라 약간의 긴장감을 느껴가면서 보스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초심자에게는 마냥 쉽다고 볼 수는 없는게 드퀘의 난이도;)
 

 다만, 한 가지. 클리어 후에 맞이하게 되는 2부 부터는 사실상 레벨업과 보물 찾기의 연속이므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보다 강한 아이템을 만들고자 한다면 -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확률적으로 떨어지는 레어 아이템을 얻고자, 반복되는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몬헌의 "물욕"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물론, 그 만큼 노력해서 멋진 수영복을 만들거나 한다면 만족감은 있겠지만, 그만큼 본인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에게만 어필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인상적인 평가도 존재합니다. 라이트 유저는 어중간한 느낌으로 엔딩을 보고 접어야 할테고, 파고들어가는 헤비 유저는 장시간 작업질을 강요당하다니, 타켓층이 어디인가. 라는 날카로운 지적도 있어요. 어느정도의 인내심으로 보물찾기 작업을 해낼만큼 - 자신이 의미를 직접 찾는 사람만이 2부에도 계속 플레이 해나갈 수 있는게지요. 저의 경우 시간적 제약도 있고 해서, 고심 끝에 약간 어중간한게 접은 경우입니다. 매력적인 숨은 보스들과의 대결도 기대는 되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고요 (...) 일단 본편 자체만으로도 별 5개는 먹고 들어갈 만큼, 충분히 명작이라고 생각되어서 미련은 없습니다 ^^ 휴대용으로 흠뻑 빠지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굉장하고 훌륭해요. 엔딩 후의 요소들까지 짜임새가 촘촘하고,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조금 지나친 바람일 수 있을꺼라는 생각도 들고... (웃음) 여하튼, 400만 판매의 대기록에는 그만큼 즐거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에서 스퀘어에닉스 채널에 가면 홍보영상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보는 것도 좋겠네요.
 주소는 http://www.youtube.com/watch?v=XIIFcbElsZo 입니다. 공식 영상들은 외부링크를 비허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바로 위주소를 시프트+클릭으로 보시면 새창에서 바로 뜰 겁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쳐야 겠습니다.

 "모험" ... 아주 어릴 때, 판타지스타4를 시작으로 RPG의 세계에 입문한 이후로, 파판6 등의 SFC시절도 있었습니다만, 확실히 요즘 작품들은, 세월히 흐른만큼, 많은 노하우가 축척되어 있어서 참으로 완성도 있게, 밀도 있게 작품을 잘 만드는 것 같습니다. 드퀘9의 매력은 참 많지만, 강렬하고 인상적인 메인 스토리도 걸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뒷전이고, 자신의 연구만에 몰입한 어떤 남자는, 결국 그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서야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게 되고, 또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라 할 수 있어요. 아이티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이고 슬프게 죽어갔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국경없는 의사회"등 수 많은 사람들과 구호품들이 가는 것을 보면서, 극심한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하는 것도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비록 숱한 어려움을 겪지만, 또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있을 때, 잘하도록 합시다. 건강이든, 가족이든 (웃음)

 더 이상의 스토리는 누설이 될 수 있으므로,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여하튼 짧지만 상당히 강렬한 이야기라인이라서 이 쪽의 재미도 놓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운드, 그래픽, 시나리오, 시스템, 이 정도의 고퀄리티 작품이 NDS라인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네요. 뭐 시장을 나누고자 닌텐도라인에 드퀘, 소니라인에 파판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 RPG를 좋아한다면, 드퀘9는 꼭 한 번 즐겨볼 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즐거운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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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너무 맛있는 빵이 있습니다. 아껴두고, 아껴두어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시 그 빵을 보니, 이미 썩어버려서 먹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것은 "현재라는 시간"일 수 있으며, "오늘의 간절한 꿈"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노력하지 않으면, 그 소중한 것은 어느 순간 환상처럼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게임이었던 사카츠쿠EU - 풀네임으로는 "프로축구팀을만들자 유럽챔피언십" 에 대하여 리뷰를 씁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네요.

 게임명 : 프로축구팀을만들자 유럽챔피언십
 기종 : PS2
 제작 : 세가
 발매일 : 2006년 3월 29일
 판매량 : 약 25만장

 플레이기간 : 2006년 ~2009년 틈틈히
 플레이타임 : 약 300시간 + @
 개인적평가 : 총평 ★★★ [즐거움 ★5 / 편의성 ★1]

 당시 8만원정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사놓고 보자! 라는 생각에 PS2도 없으면서 일단 샀습니다. 이 정도로 기대가 컸던 작품은 이 게임이 거의 유일했다고 생각합니다. PS2도 결국 몇 달 후, 장만하게 되었지요. 들뜬 마음으로 플레이를 시작하고, 얼마간 즐겁게 하다가 뭔가 지겨워서 잠깐 멈추었고, 또 아쉬운 마음에 새로 시작하고 그러다가 또 멈추었고... 그런 시도를 한 10번 정도는 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담배를 끊는 것이, 이것 끊기보다 더 쉬웠습니다 (...) [혹자는 게임을 두고 마약과도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정말로 마약과도 같은 게임이 몇 개 있습니다. 특히 축구팬들의 경우라면, 경영게임을 조심해야 합니다. FM같은 축구매니지먼트 게임에 빠져있다가, 인생을 망쳐버린 경우가 해외에서도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의 특징과 장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카츠쿠는 기본적으로 축구구단운영 입니다. 직접 경기를 하는 게 아니고, 팀편성하고, 경기를 관람합니다.
 사카츠쿠EU는 사상 처음으로 기본 무대가 일본 제이리그가 아니라, 유럽입니다. 그것도 6개 리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LFP, EPL, 세리에 무엇이든 가능하고, 유명팀들과 시즌 중 맞짱도 가능합니다. 통채로 옮겨놓은 그 느낌을 살려놓았습니다. 시합도 풀화면으로 작동합니다.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는 재미가 있고, 결과를 쉽게 단정짓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기까지는 적어도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껏 상상해왔던 그 축구게임 그 자체입니다. 유럽의 약소팀으로 나만의 드림팀을 꾸려서, 강팀들을 연파하고, 유럽정상에 등극한다! 게다가 등장하는 선수는 25,000명(실명선수9천명) 온갖 축구레전드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로딩이 길어도 너무나 깁니다. 진행상 없어도 되는 쓸데없는 장면 하나하나에 로딩이 길어서, 템포가 너무나도 느립니다. 덕분에 1년을 진행하는데 최소 10시간입니다. 엔딩을 7~8년차에 본다고 해도, 약 100시간은 투자해야, 약간의 결과물 (완성되어가는 팀) 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최소기준입니다. 완전히 성숙된 꿈의 드림팀을 만들려면 수백시간을 공들일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시합 스킵이 되지 않아서, 시간 단축도 되지 않습니다. 편의성이 극악할 정도입니다.
 
 만약 3~400시간을 게임말고 다른 한 곳에 투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분야의 상당한 식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도 1~20권은 독파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저도 이 극악적 플레이 타임에 이 작품을 끝끝내 제대로 즐길 수 없었습니다 (...) 아찔하지요.

 로딩이 긴 것은 PS2 하드의 성능보다 더 많은 것을 한 번에 담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는 평도 종종 듣곤 합니다. 사실 고성능 PS3 시대에 하드인스톨 버전으로, 경기화면을 대폭강화한 EU2가 나온다면 당장 구매할 사람도 많을 겁니다. 게임 자체는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를 현실화 한 것입니다만, 그 생각에 비해서 시스템과 하드웨어가 제대로 뒷받침 해주지 못했고, 결국 어설픈 비운의 작품이 태어나고 만 것이지요. 냉정하게 말해서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뒷따릅니다. 좋은 평가를 붙인다면, 역사적 실험작 정도가 될 수 있겠고요.

 세월이 흘러서 2010년이 되었고, 일본 아마존에서 모처럼 이 게임의 가치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현실은 이제 그저 "100엔"게임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천원짜리 김밥정도의 가격이지요. 지금은 구입할 경우 제품보다는 배송비가 더 드는 게임입니다 (...) 나는 이런 작품을 스스로는 꽤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처음 샀던 게임이라는 특별함도 있었고 (웃음)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게임이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은, 과거 유명한 축구선수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덕분에 다양한 자료를 찾아다니면서 하나 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 선수들을 정리한 블로그의 글들이 많은 호응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보면... 결실은 - 게임의 즐거움이 아닌 축구에 대한 이야기들로 나타났네요. 여하튼, 이제 이 게임을 접을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저평가게임, 실패작이라는 혹독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너무 좋아했었어요. PS2를 사놓고 오래도록 플레이한 것은, 이 녀석과 삼국무쌍4 두 개 뿐이었지요. 혼자 놀 때는 이 녀석으로 놀고, 친구랑 놀 때는 삼국무쌍이었고... 덕분에 많은 다른 작품들들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한 것이 돌아보면 참 아쉽기도 합니다. 대학 신입생 때 서로 너무 좋아하는 CC가 되면, 하도 커플끼리만 다녀서, 다양한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는 것처럼, 여하튼 훌륭한 여러가지 작품들을 뒤로 제쳐두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녀석이었어요. (웃음)

 이 게임에 대한 거의 마지막 아마존 리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 사카츠쿠 시리즈에서는 1, 2위를 다툴 정도의 좋은 작품인지도 모른다. 다만 ··· 아깝다.
 로드가 길고, 스킵 기능도 없고··· 부디 PS3의 다음 작품에 기대하고 싶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돌아보면 아까운 작품이었고, PS3 차기작으로 정말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바람대로 분명 조만간 새로운 작품의 소식이 들려올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

 하나를 얻게 되면, 하나를 잃게 된다.
 하나를 잃게 되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된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어쩌면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네요. 이제 이것을 접어두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되겠지요. 휘슬은 울렸고, 이제 경기를 끝내며 은퇴해야 하는 선수의 눈물. 그와 비슷한 감정으로 이 게임을 봉인합니다. 더 이상은 투자할 시간적 여유도 없으니...


 게이머들은 레벨99를 꿈꾸곤 합니다. 한 우물만 파는 저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이렇게 99를 찍어놓은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한 분야의 그래도 괴수들이지요. 어린 시절에는 몇몇 게임들에서 가능했는데, 요새는 통 끈기가 없네요 (웃음)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레벨99를 꿈꾸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게임 동호회에서, 게임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 생각해 봅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 또 그렇게 사는 것이 결코 마냥 즐거운 삶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하면서, 여유를 또 찾아봐야겠지요. 그럼 사카츠쿠.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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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가와 소닉은 개인적으로 생각할수록 즐거웠던 추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접했던 가정용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인 플레이도 가능해서, 동생과도 놀고, 친구와도 놀고, 처음에는 게임만 하다가 혼도 많이 났었고요. 기억이 흐릿하지만 당시에도 가격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6,800엔이었으니 그래도 5~6만원은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가를 감안한다면, 엄청난 가격으로 느껴질법도 합니다. 롬팩이란 결코 싸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워낙 재밌었던 기억이 가득하지만, 알고보면 이 작품이야말로 메가드라이브(MD)의 최고봉 작품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 위키에 따르면 판매량이 전세계적으로 600만개. MD의 전설적 작품이지요. 실제로 완성도도 굉장해서, 그 압도적인 속도감은 단연 일품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끝에서 끝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되지만, 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마리오 식의 게임이지요. 마리오가 점프 등을 잘해야 하는 아기자기한 조작감을 가지고 있다면, 소닉은 거침없이 내지르면서 화면을 질주하는 그 느낌을 매우 잘 살리고 있습니다. 마리오나 소닉이나 각각 SFC, MD의 간판 액션 스타로써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게임캐릭터 중 하나였고요. 요즘은 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둘은 라이벌 구도 였다고 봐야겠지요.

 작품으로 돌아와서, 앞서 언급했듯이 2인용은 화면을 둘로 나눈 대전모드로써 즐길 수 있고. 1인용의 경우에도 2P 패드로 협력캐릭터인 테일즈가 조작이 가능해서, 사실상 협력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도 굉장한 발상이었다고 봅니다. 협력 플레이의 즐거움이야 말할 게 없겠지요. 최근 게임 중에서는 바이오하자드5 도 협력플레이로 진행되고, 리틀빅플래닛은 아예 멀티플레이를 해야만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있습니다. 여하튼 과거에는 2인이 동시에 협력해서 할 수 있는 게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 아마 게임잡지나 여러가지 소문, 친구의 정보 등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던 사실입니다 - 소닉이 슈퍼소닉이 될 수 있다는 황당한 정보였지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 정보의 이동속도가 매우 느렸던 시대였고, 전문적이고 마니아적인 정보의 유통은 더욱 느릴 수 밖에 없었어요.

 방법은 매우 상세한데, 링을 50개를 모으고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면 별도의 고리가 출현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면 스페셜 스테이지가 플레이 가능하지요. 그 특별한 무대에서 링을 일정한 수 이상 모은 후 - 최종적으로 카오스 에메랄드를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카오스 에메랄드 총 7개를 모두 얻게 되면, 드디어 성공입니다. 이후에 50개의 링을 얻고 점프하면 슈퍼소닉이라는 황금소닉으로 변신하는 것이었지요! 게다가 에메랄드를 다 모으고 게임을 클리어하면, 진 엔딩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 복잡미묘한 조건을 알 리가 없었고 -_-; 슈퍼소닉은 믿고 싶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어떤 잡지에서 슈퍼소닉의 존재를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헉!" 하는 느낌을 잊을 수가 없네요. 다만 비기가 숨어있었지요. 저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사운드 테스트에 들어가서, 몇 몇 곡을 순서대로 들은 후, 시작하면 곧바로 "슈퍼소닉모드"가 가능했던 숨겨진 비기가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 이렇게 비기모드로 슈퍼소닉을 만들었을 때, 얼마나 놀랬는지... 여하튼 저는 지금까지도 진엔딩이 뭔지도 모릅니다 (...) 진 엔딩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도 합니다만. 하하.

 난이도도 상당히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이야 쌩쌩 달리는 기분을 느끼지만, 나중가면 끙끙 거리는 기분도 적지 않게 느낄 정도로 많이 죽었던 것 같습니다. 순간의 조작미스로 죽어버리는 이 높은 난이도도 사실은 고전액션게임의 큰 재미라 할 수 있겠지요.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고,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분도 어려웠던 게임이 맞다고 같은 추억을 공유합니다. 하기야 쉽게 얻은 것이 어찌 기억에 오래 남겠습니까. 힘겹게 힘겹게 마침내 끝까지 갔을 때의 그 추억이야말로 참으로 오래남곤 하지요.


 세가는 지금도 비록 하드웨어 시장에서는 철수했지만, 많은 즐거움이 가득한 소프트웨어를 창조해 내고 있습니다. "SERVICE 와 GAME 의 단어에서 단어의 앞에 2글자인 SE 와 GA를 연결하여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세가의 이름처럼 서비스가 있는 게임, 즐거움이 있는 게임들이 많이 있어요. 최근에는 전장의발큐리아 및 베요네타를 과감하게 지르기도 했고, 이전에도 프로축구팀을만들자 시리즈 등을 즐겨하곤 했지요. 하여간 저 추억의 로고를 지금도 볼 수 있는 것도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망하고, 합병되고, 이러한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나름의 길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해야할까요. 참, 또한 축구팬들에게는 유명한 FM이라는 게임도 세가가 제공하고 있군요.

 이제 글을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세상이 많이 발전되어서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제 그 당시의 CM까지도 언제든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휴대용 기술들이 더욱 발전되어서, 심심하면 손쉽게 고전게임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요. 여하튼 영상을 첨부합니다. 추억을 한 번 리뷰한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네요. 리뷰어 시북. 20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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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이 책 "캅베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서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하나의 깊은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 단어를 두고 알기 쉽게, 그리고 자세하게 파헤쳐 놓은 저자의 글솜씨에 감탄하기도 했고요...

 캅베드, 마법 같은 단어의 놀라운 비밀이야기

 저자 : 헤르메스김 / 출판사 : 살림
 출간 : 2009년 2월 25일 / 가격 : 12,000원
 페이지 : 276 / 판형 : A5
 개인적평가 : ★★★★★

 캅베드는 쉽게 말해서, 공경하라 라는 의미입니다. 공경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공손히 받들어 모심"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공손히 받들어 모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각해 봅시다.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바꿔준 너무 고마우신 은사님께서 직접 집에 찾아오시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먼 길을 거쳐서, 내가 보고 싶다면서 말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우선 목욕부터 하고, 최대한 깔끔한 옷을 차려 입고, 식사 준비를 갖춰놓고, 그리고 맞이하러 나가서 직접 모시고 올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너무나도 귀중한 사람이고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공경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로 무겁게 대하라", "반드시 존귀하게 하라" 요즘 말로 한다면 "VVIP"로 모셔라. 정도 되겠군요.

 성경에 보면, 십계명 중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할 첫 번째 항목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라고 나옵니다. 나머지 다섯 가지는 하지 말라 입니다. (살인, 거짓말 등) - 그런데 의문! 왜 단 한 가지 인간에게 하라고 나온 것이 왜 하필 공경하라 입니까. 더 황당한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 생각할 수록 "어이없음" 입니다. 타인을 공경하면, 타인이 편하고 잘 되지, 왜 내가 잘 되는건지... 나는 고생인데 (...) 남 뒤치다꺼리를 하면, 내가 잘 된다?

 가장 의문스러웠던 것은 "비록 그가 공경받을만 하지 않더라도..." 공경하라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받는다고 합니다. 나는 그 이후로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주제를 놓고 몇 달 동안 말입니다. 한참 후,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나이든 이후로는 "네 삶은 네가 알아서 해라", "나는 이제 해줄 게 없다" 라면서 정겨운 가족과는 거리가 있었던 아버지, 우울증으로 인해서 온 가족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어머니... 나는 어렵게 마음을 고쳐먹고, 귀한 분을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며, 두 분을 매달 식당으로 모시고 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식당 와서도 별 말도 없이 눈치 보면서 밥 먹기 급급하고...

 그래도 식사 후에는, "고맙게 잘 먹었다" 라고, 넌지시 한 말씀 하셨습니다. 며칠이 흘렀습니다. 아버지는 밥을 얻어 먹은게 마음에 남아 있었는지, 당신의 월급날에, 다 큰 아들에게, 고기나 먹으로 가자, 오늘은 내가 사마,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용돈까지 주시더군요. 이른바 88만원 세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써 모처럼의 용돈은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당신도 먹고 살기 빠듯한 IMF몰락가장 이었기 때문이지요. 그 이후로, 한 달에 두 번은 이렇게 가족끼리 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소소한 행복일 수 있다는 것도 느꼈지요.

 아버지는 이제껏 월급날이면,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거나, 산을 가거나, 바다를 가거나, 그런 삶을 늘 살아오셨지만, 아들이 조금 벌어왔다고 식사를 대접하는 그 마음을 생각하며, 자신도 반드시 응당 그래야 겠다고 마음 먹으신 겁니다. 인간은 특이하게도 받은만큼,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우며, 콩을 심는 곳에는 콩이 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남을 존중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더욱 나를 귀하게 대하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공경은, 자신에게도, 신에게도, 사물에게도 쓸 수 있습니다.
 "자신을 공경하는 자는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신을 공경하는 자는 "불멸"을 얻을 수 있다."
 독실한 친구에게 왜 신을 공경하면 불멸을 얻는건데? 라고 물어봤더니, 한 시간 동안 설교 아닌 설교를 들었습니다. 내가 신앙심이 없어서 그런 건지 -_-;;; 그 이유를 아직도 명확히 모릅니다. 친구말로는 뭐 대략 영생을 얻는 거 아니겠니. 그런 답변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스스로를 매우 귀중하게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169cm 호빗족이자, 건강도 부실한 편이고, 객관적으로 표준보다 한참 부족한 스스로의 모습이지만, 장점에 집중하고, 좋아하는 것에 귀기울이고,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보람찬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후에 여러권의 자기계발서에서 동일한 메세지를 느끼면서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 가장 중요한 것들을 위해서 행동하라"

 예컨대 아내가 소중한 사람은,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행동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참 쉽죠잉~? 이라고 하기에는 마냥 쉽지는 않을테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성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대한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대화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만불짜리 미소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만의 빛나는 재능조차도 뭐 별 거 아냐 하면서 뒤로 묻어버린 채 -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누군가들의 시선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에게 솔직해져 보십시오.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십시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살펴보고 이해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소망을 이루게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움직여 보십시오. 바로 거기에 행복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설사 내 모습이 초라하고 비참하더라도, 그것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설령 자신의 모습이 주눅들고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진심으로 자신을 따뜻하게 잘 대한다면, 반드시 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서, 좀 더 자신을 아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기계처럼 무미건조하게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일 테니까요.

 이 책의 특별한 힘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한 편의 긴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을,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반드시 그것이 되돌아와서 더욱 인생을 빛나게 만든다는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힘겹게 맞이하고 있을지 모를 하루라는 시간이지만 - 그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기에도 인생은 짧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느끼게끔 만들어줄 책. 캅베드를 추천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 Reviewer 시북. 20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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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북

 써놓은대로 이루어진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황당하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단번에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 "의사"라고 종이에 써놓으면 의사가 되냐? 웃기지 마시라!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특별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뭐, 아주 스페셜한 것은 아니고, 조금 기묘하고도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리뷰 블로거로 다시 재도약하기 앞서서, 먼저 스스로에 대해서 냉철하게 리뷰를 해볼까 합니다.

 어린 시절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수재소리 듣는 자칭타칭 "똑똑이" 였습니다. (웃음)
 이런 소리 듣고 자란 아이들은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자기가 잘난 줄 알고, 거기(잘난 모습)에 맞춰보려고 어느 정도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저의 경우는 제법 있었습니다.
 우선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했고, 게다가 뭐든지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특히 치명적이었지요.
 어린 시절 노력도 없이, 너무 성적이 잘 나왔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독약"과도 같았습니다.
 
 중국의 어느 학자는 세 가지 불행을 경고합니다.
 - 어린 시절의 급제
 - 부모가 부자
 - 재주가 많은 것
 나의 어린 시절은 되돌아보면, 이 세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어요. 반장 같은 것도 해보고, 모범생 이미지에, 아빠는 사장님이고,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았었어요. 미술대회, 음악대회, 글짓기대회 교내에서 상도 탔었지요. 또래의 여학생들에게도 인기도 약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왜 불행일까요? 이로 인하여 - 첫째로, 나는 오만했고, 둘째로 게을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일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건강 상의 치명적 문제가 발생해서 중학교 1학년에서 학업을 그만두게 되었지요.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성장하면서 낫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의사의 진단이었습니다. 류머티즘이었지요.
 심한 날은 혹독했습니다. 특히 장마가 올 때면 그 고통은 대단했습니다.
 무릎이 퉁퉁붓고, 구부려지지도 않았고, 밤새 앓다가 아침녘에 간신히 잠을 잤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또 신기하게도,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때부터, 정말 살아간다는게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마음대로 뛰어놀지도 못 하고, 집에서 살아야만 하는 게 왜 그리 재밌었을까......

 .

 처음에는 불평, 짜증이 없지 않았습니다.
 다니던 교회도 못 가고, 나아가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학교다니던 애들이 부럽기도 하고, 난 왜 이럴까... 등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거든요. 정말로.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지요.

 내 마음 깊은 곳에 써 놓았던 희망의 빛이 있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함께 놀면 정말 행복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맙게도, 매번 놀러와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사실 우리 집에는 "게임기"가 있었고...
 더욱이 부모님은 일이 많아서, 저녁 늦게 들어오고, 그야말로 "우리들만의 아지트"였지요.

 신영복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머리좋은 것이 마음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좋은 것이 손좋은 것만 못하고
 손좋은 것이 발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觀察(관찰)보다는 愛精(애정)이, 애정보다는 實踐(실천)이,
 실천보다는 立場(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同一(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입니다"

 학교를 다니고, 안 다니고,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없고,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서, 우리는 동일한 입장에 있었어요. 단지 "같이 게임하면서 노는 친구" 였어요.
 그 때 와주었던 친구들 몇몇과는 지금까지도 "너무나도 친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지요.
 그렇게 부단히도 발걸음을 옮겨주었던 친구들, 그렇게 함께 놀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좋았어요.
 함께 모여서, 마리오 카트 같은 자동차 게임, 축구 게임, 또 슈퍼로봇대전 같은 게임도 모여서 하고...

 한편으로는, 그 시절 약도 무진장 먹었습니다. 이 약, 저 약, 부모님은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집안의 자랑거리던 장손이, 이제는 밤에 끙끙 앓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괴롭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겁니다.
 그런 아픈 몸이 회복된 것이 약 덕분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선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나는 마음에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의자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면서, "어쩌면 걸을 수 있을 거 같다" 라는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어쩐지 몸이 부드러웠습니다.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 - 그것이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10대 후반 무렵, 걷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만큼 회복되었고, 살짝 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제서야 "신께 감사하며 -_-;;; 다시 교회도 다니기 시작" 합니다.
 또 하나의 즐거운 인생의 시작이었지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이며, 마음껏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이었다.

 저는 그래서 의사선생님들은 참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치료한다는 일은 정말로 멋진 것이지요.
 지금도 좋아하는 인물 중에는 의사출신이 좀 있습니다.
 루쉰, 체게바라, 안철수 등등 (...) 아 모두 의사하다가 전직을 하셨군요-_-; 여하튼 그렇습니다.

 .

 사실 여기까지는 꽤나 해피엔딩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낭랑 18세에서 끝나지 않는 법이지요.
 인간은 아주 멋지고, 위대하기도 합니다만, 또한 너무 간사하기도 합니다. 정말 신의 걸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복권 당첨을 맞으면 잠깐의 행복 뒤에는, 생각지도 못한 불행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는 호사다마 같은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다시 마음껏 걸을 수 있게 되고, 세상 모든게 좋아보이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병만 나았으면 하고 바래왔습니다만... 막상 또 잘 걸어다니다 보니까, 고민이 막 피어오릅니다.
 나는 중학교 중퇴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사회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정신적인 고민으로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는가 하면 -_-; 그 당시 썼던 일기에는 빼곡한 내용들이 가득했지요.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나,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난 왜 이렇게 못난거지, 힘을 내보자, 뭐 이런 내용들.
 그러니까 전혀 현실적인 답을 찾지 못한 채,
 고민에 고민만 하면서, 위험에 뛰어들지 못하는 울보 어린아이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지금 다시 생각해서, 그 시절에 대한 느낌을 절대적 긍정의 미학으로 새로 쓴다면,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意思(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영복 선생님 홈페이지 中]

 적어도 불안에 떨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독하게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던 아름다운 시기였다 랄까...
 여하튼, 지남철 처럼 명확한 목표는 없었기에, 어느 방향으로 살아야 할지, 빙글빙글 돌면서 떨고 있었어요.
 의사, 변호사, 선생님...? 우물 안 개구리였기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폭은 참 좁았던 것 같기도 해요.

 돌아보면, 그 18살, 19살, 무렵에 정말 좋아하는 것 한 가지만 생각하면서, 달려왔다면,
 10년이 더 지난 지금쯤이면 분명히 그에 걸맞는 모습이 되었으리라 확신해요.
 하지만 나는 그 당시만해도 조금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면, 항상 강조하는게 있어요.
 "분명히 될 수 있다고 확신하라. 넌 할 수 있어. 지금 실망할 필요는 없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믿음은 결국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상상하는 그 모습으로 마침내 조금씩 닮아가게 되더군요.
 요즘 사람들이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 까닭이 있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 긍정적 자기인식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해요.
 자신을 아끼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사랑하고, 가꿔나가는 것은, 삶에 있어서 가장 값진 것 중에 하나지요.

 - 2부에서 계속

 2010. 1. 삶을 돌아보며...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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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새해가 밝았습니다. 업데이트도 듬성듬성이고,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 많은 블로그지만, 오늘도 들려주시는 분들에게 - 감사의 인사부터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0년에도 틈틈히 노력을 해서 좋은 내용들을 좀 더 담아낼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출발할까 합니다. 칠레의 명수비수, 피게로아 편입니다.

 프로필

 이름 : Elias Figueroa (엘리아스 피게로아)
 생년월일 : 1946년 10월 25일
 신장/체중 : 183cm / 81kg
 포지션 : DF / 중앙수비수
 국적 : 칠레
 국가대표 : 47시합 2득점

 칠레의 전설! 남미에서 3년 연속 최우수선수를 수상한 "수비수"

 우선 그의 월드컵 도전기.
 1966년 첫 월드컵 출장. 조별리그 탈락. 당시 만 19세. 그리고 8년.
 1974년 전성기에 두 번째 월드컵 출장. 조별리그에서 강호 서독에게 0-1로 패하고, 아쉽게 2무 1패로 탈락.
 그리고 또 8년.
 1982년 세 번째 월드컵 출장. 그러나 아쉽게도 조별리그에서 탈락.
 결국 토너먼트에도 한 번 올라갈 수 없었던 1966~1982년까지의 칠레팀과 캡틴 피게로아의 월드컵 3회 출장...

 그런데 우리는 왜 그를 기억할 필요가 있는 걸까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피게로아의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세상은 늘 승자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추억하곤 한다지만,
 강렬한 활약을 펼쳤던 숨은 보석들도 기억한다면 더욱 이야기는 흥미진진 하겠지요.

 지난 이야기 - 토스탕 편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1970년대에는 남미최우수선수를 선정하곤 했습니다.
 토스탕, 펠레, 지코, 마라도나, 켐페스 등 월드컵 때 이름을 날린 화려한 선수들이 선정되곤 했고요. 그런데 이런 유명선수들 틈에서도 1974년, 1975년, 1976년 수상자는 3년 연속으로 "엘리아스 피게로아" 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공격수도 아닌, "수비수" 였지요. 당대 남미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던 명수비수가 바로 피게로아 였습니다.

 어린 나이로 데뷔시부터 곧바로 실력을 인정받은 출중한 신동 수비수 피게로아는, 클럽팀에서는 우승을 달고 다니던 선수였습니다. 그 빼어난 활약들을 인정받아서 1971년에는 브라질의 명문클럽 인테르나시오날에서 활약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명문 인테르나시오날에서 그는 연거푸 우승을 따냅니다. 주리그 대회에서는 재적한 5년간 모두 (!) 우승을 차지했고, 1975 & 76시즌 브라질 전국선수권에서도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 막강 팀의 수비라인을 통솔하던 인물이 바로 피게로아 였지요.

 비록 월드컵과는 좋은 인연이 없었지만, 브라질 명문 클럽의 수비를 지휘하면서 우승을 줄줄이 달고 다녔던 칠레출신의 캡틴 피게로아에게 남미는 3년 연속 "최우수선수"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주었던 것입니다. 피게로아는 기본적으로 체격이 좋았고,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 발군의 피지컬 능력, 센스있는 뛰어난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특히 통솔력은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상대 공격진은 피게로아가 이끄는 수비라인을 돌파하는게 상당한 고역이었지요. 그는 소속팀에서도, 국가대표팀에서도, 수비의 리더이자, 팀의 캡틴이었습니다.
 
 남미가 배출했던 뛰어난 수비수는 누구냐? 유럽에는 베켄바워도 있고, 한국에는 홍명보도 있었다! 남미는 누가 있었냐? 라고 물으신다면 피게로아의 이름도 반드시 후보로 올라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1966~1982년의 긴 세월동안 칠레팀의 수비의 기둥으로 있으면서, 월드컵 예선 돌파를 3번이나 이루었던 피게로아를 두고, 그 월드컵 진출 자체로도 충분히 평가받을만 하다 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유명한 스타 없이도, 거기까지 갈 수 있었던 것에는 피게로아의 저력이 충분이 가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1974년 월드컵에서도 칠레의 피게로아는 강호 서독에게 패하긴 했지만, 본선 3경기 모두 분투하면서 멋진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칠레는 패했지만, 피게로아는 멋있었다. 역시 그 이름값을 하더라. 그런 평가를 받았습니다.
 
 후에도 피게로아의 명성은 여전해서, FIFA100에도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를 기념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조회수는 5만 정도로 아주 높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남미에서 스타 수비수로 활약한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 종종 찾아서 보긴 보는가 봅니다 :) 영상을 덧붙이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 새해에도 최선을 다해서, 2010,2011,2012, 3년 연속으로 인생 최고의 날들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웃음)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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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북